[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베르나르 보시옹 ‘엘리제궁에서의 서비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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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대통령 식탁 40년 책임진 셰프 “입맛은 좌파-우파 다르지 않더라”

“당신은 국가적 영속성의 상징이다. 국가의 대통령(chef de l'´Etat)은 바뀌어도, 대통령궁 주방의 셰프(Chef de cuisine)는 변치 않는다.”

2012년 5월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엘리제 궁의 주방장인 베르나르 보시옹(61)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74년부터 40년간 엘리제 궁에서 요리사로 일해 왔다. 지난해 10월 퇴임한 그가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까지 역대 대통령의 입맛을 다룬 ‘엘리제 궁에서의 서비스(Au Service Du Palais·사진)’라는 책을 펴냈다.

각자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취향을 가진 5명의 대통령을 모시며 40년을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그는 “음식 취향에서는 좌파, 우파 대통령이 다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1981년 ‘삶을 바꾸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프랑스 5공화국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 됐던 미테랑은 예상과 달리 엘리제 궁 주방팀에 “자신의 과업을 평소처럼 수행해달라”는 편지를 직접 써서 전달했다고 한다. 그 결과 엘리제 궁의 식탁은 드골, 퐁피두, 지스카르데스탱과 같은 전임 우파 대통령보다 더 화려해졌다. 저자는 “미테랑의 두 번의 임기(14년) 동안 프랑스는 고급 요리를 발전시키는 최전성시대를 맞이했다”고 말했다.

미테랑은 매 식사마다 양고기와 거위간(푸아그라), 상어알(캐비아)과 조개관자(생자크) 요리를 빼놓지 않았다. 1995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엘리제 궁을 방문했을 때의 식탁도 “혁명과는 관계없었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송로버섯(트뤼프)과 새끼오리 가슴살 요리가 식탁에 올랐다. 저자는 “나는 ‘캐비아 좌파’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딱 맞는 말”이라고 회고했다. 실제로 미테랑 시절 엘리제 궁의 식탁에는 커다란 캐비아 항아리가 훈제 연어요리 옆에 항상 놓여 있어 손님들은 캐비아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식탁이 가장 검소했던 것은 우파 대통령인 사르코지였다. 그는 프랑스 정식 코스요리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 치즈 먹는 순서를 아예 생략해 버렸다. 대신 피자나 파스타, 코카콜라와 같은 이탈리아식 간편한 음식을 즐겼다. 속도광인 사르코지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나 12분 만에 점심식사를 먹어치운 적도 있다.

대식가로 유명했던 우파 대통령 시라크는 시도 때도 없이 식탁 회동을 즐겼다. 손님을 맞기 위해 그는 한 끼에 두 번 식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재정위기 시대의 좌파 대통령 올랑드는 ‘절제’를 내세워 송로버섯이나 가재 등의 비싼 식재료 구입을 대폭 삭감했다.

저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부터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원수까지 각국의 정상들에 대한 회고도 곁들였다. 엘리제 궁의 ‘음식 외교’는 유명하다. 그는 “한 끼의 식사가 나라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왔다고 말했다. 프랑스 음식점 평가서인 미슐랭가이드의 편집자인 미카엘 엘리스 씨는 “보시옹은 전 세계 요리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평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대통령#셰프#엘리제 궁에서의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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