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병역 ‘겉’만 훑은 靑… 공직자 자질 ‘속’ 검증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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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서도 문창극 사퇴론 확산]

文, 열릴까 닫힐까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7일 오전 굳은 표정으로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집무실로 올라가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文, 열릴까 닫힐까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7일 오전 굳은 표정으로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집무실로 올라가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박근혜 정부 2기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발탁을 위해 가동됐던 인사 검증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인 출신인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과거 강연과 칼럼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고, 교육을 평생 업(業)으로 삼아온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송광용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은 학문적 성과의 징표인 논문 검증에서 실패했다. 인사 검증의 기본을 못 지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산, 병역, 가족사항 등 기본적인 ‘하드웨어’ 검증에 치우친 나머지 후보자의 자질과 주변 인사들을 통한 평판 검증 등 ‘소프트웨어’ 검증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자에 대해서는 주로 종교적인 편향성에서 비롯된 발언과 그릇된 역사인식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30년 넘게 언론인으로 일한 문 후보자의 경우 공개적으로 써 온 칼럼 등 기사와 발언에 대해 검증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교회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기독교 신자들을 상대로 한 강연이었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국가관과 역사인식, 대일(對日) 및 대미(對美)관에 대한 검증 소홀의 책임은 면할 수 없게 됐다.

문제의 동영상을 미리 입수하는 것은 힘들었다 해도 주변 인사를 상대로 한 평판 조사라도 철저히 했더라면 사전에 걸러낼 수 있었다는 만시지탄도 나온다.

교육 분야를 총괄해야 하는 송광용 교육문화수석과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도 문제는 간단치 않다. 교육자란 점에서 논문 표절 등의 문제를 기본 검증 항목에 포함시켰다면 간단히 걸러낼 수 있는 문제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청와대에서 인사 검증 작업에 참여했던 한 여권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논문 문제는 청와대도 알았을 것”이라며 “아마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보고 통과시킨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교육 수장들의 논문 표절 문제는 청와대가 아직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잣대로 인사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도 있다. 앞서 2006년 당시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자가 국민대 교수 시절 논문 표절과 중복 게재 의혹으로 불과 13일 만에 낙마했다. 이후 논문 표절은 공직자 검증의 필수 코스가 됐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시점에 공직자의 학문적 진실성에 대한 잣대는 더욱 강화됐는데도 청와대만 세상의 흐름에 둔감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국민이 대통령에게 인사권을 위임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국민 눈높이에 못 미치는 인사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현 정부에서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인사 검증 실무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담당한다. 하지만 인사 검증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법적 논리에만 매몰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검증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2기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인사 검증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도 후보에 대한 맞춤형 검증을 진행했다면 충분히 사전에 걸러낼 수 있었다는 의견이 많다. 공직 후보자의 경우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해당 후보자로부터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은 뒤 안전행정부 경찰청 검찰청 국세청 등 15개 기관에서 각종 자료를 제공받아 분석에 착수한다.

인사와 관련한 철저한 보안도 중요하지만 여론의 동향을 떠 보기 위한 ‘스트로 폴’을 도입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해당 후보자와 관련한 어지간한 의혹에 대한 검증이 이뤄질 수도 있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청와대에서 야권 인사도 고려했지만 기본적인 검증 절차에서 걸러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인선하려면 후보자 직군에 따라 적절한 검증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인사 검증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문창극#청와대#인사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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