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세이/황용필]슬퍼도 다시 일어서 가야 하는 게 인생 아닌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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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필 국민체육진흥공단 중랑지점장 스포츠정치학 박사
황용필 국민체육진흥공단 중랑지점장 스포츠정치학 박사
나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월드컵축구 생중계를 볼 생각입니다.

이미 결론 난 경기를 재방송으로 보고서 나 혼자 뒤늦게 색다른 감회에 젖어 그제서 절반쯤의 감동을 느낀다면 난 비겁한 팬입니다.

어린 시절 아침, 학교 등굣길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홍수환 선수가 권투경기를 하는 라디오 중계방송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라는 아나운서의 쉰 목소리에 거부감 없이 우린 기뻐했습니다.

모름지기 응원이란 현장에서 하는 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생방송 때 하는 응원도 선수에게는 격려 이상의 마력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외의 뭔가 커다란 에너지가 선수들에게까지 전달되고 나 역시 ‘그때 그 자리’의 일정한 주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지요, 문제는 승패입니다.

‘세월호’ 아픔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축구경기를 보려 합니다.

‘애이불상(哀而不傷)’, ‘슬퍼하되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함께 울고, 함께 슬퍼하되 다시 또 일어서서 가야 하는 인생이니까요.

9·11테러가 터지고 일주일이 지난 2001년 9월 18일,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팀은 첫 경기를 홈구장에서 1000여 마일 떨어진 시카고에서 치러야 했습니다. 양키스 조 토레 감독 역시 대다수의 미국인처럼 “이 난리통에 야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자신을 질책했습니다. 하지만 상대 팬들이 “I Love NY!”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해줬을 때 단순히 경기만 치르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지요.

얼마 지나 뉴욕 메츠는 테러 이후 처음 홈경기를 치렀습니다. 경기 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경찰과 소방관들을 격려하며 서로를 보듬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바짝 말라 있었지요. 그러나 메츠의 포수 마이크 피아자가 8회 투런 홈런을 쏘아 올리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보비 밸런타인 감독과 모두는 “딱, 하는 방망이 소리와 함께 슬픔을 떨치고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박수 치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승리의 아침이면 활보하겠지만 패배한다면 힘든 하루를 어찌 보내야 하나요? 이 또한 연연하지 마시라. 골문은 네모지만 공은 둥글다는 사실!

기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평범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누군가의 슛 동작에서 아름다운 통찰과 경험을 맛보았다면 그런대로 견딜 만한 위안은 받았을 테니까요.

그러하니, “Enjoy it, Reds! We Support!”

황용필 국민체육진흥공단 중랑지점장 스포츠정치학 박사
#월드컵#생중계#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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