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창업지원” 외치지만… 벤처기업수 3년째 제자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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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곳중 6곳 창업 5년 넘어… 성장 멈춘 벤처 왜?

2001년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면서 정부가 시행한 ‘벤처 건전화 정책’은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경제 부활의 상징’에서 투자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먹튀’의 표본으로 전락했다. 한 벤처기업가는 “1등 신랑감으로 불리다 신용불량자 신세가 된 기업가가 수두룩했다”고 말했다. ‘무늬만 벤처’를 솎아내는 데 주력했던 정책 덕분에 2001년 1만1392개에 이르렀던 국내 벤처기업 수는 2003년 7702개로 줄었다.

2004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벤처 활성화를 위한 금융·세제 지원방안’과 이듬해 내놓은 ‘벤처 활성화 보완 대책’은 3년여간 터부시됐던 벤처라는 용어를 다시 전면에 꺼내들었다. 당시 정부는 △신용을 회복한 벤처기업인 신규보증 △투자조합 조성 및 에인절 투자 세제혜택 △벤처캐피털 투자 재원 확대 및 규제 완화 등을 내걸었다. 그 결과 2006년 벤처기업 수는 다시 1만 개를 돌파한 데 이어 2012년 2만8193개로 늘어났다. 창업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현재 벤처기업 수는 3만 개를 목전에 두고 3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창업에 대한 각종 정책자금을 쏟아 붓고 있지만 더 이상 벤처기업의 양적 확대로는 연결되지 않고 있다.

○ 받기 어려운 벤처 확인 제도

기술보증기금이 운영 중인 벤처통계시스템 ‘벤처인’에 따르면 이달 7일 현재 국내 벤처기업 수는 2만8629개. 모바일 업계에서 투자자의 주목을 받는 ‘스타 벤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2012년부터 성장이 멈췄다. 이를 두고 2006년 바뀐 ‘벤처 확인 제도(벤처기업 지위를 부여해 세제 등 각종 혜택을 주는 제도)’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2006년 벤처기업 확인 주체를 중소기업청에서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벤처캐피털협회 등으로 바꾸면서 기술만 가지고도 벤처기업 지위를 얻을 수 있던 ‘신기술 인증 방식’을 없앴다. 당시 벤처기업의 70% 이상이 이 방식으로 확인을 받았다. 대신 확인 기관의 평가를 거쳐 보증이나 대출을 받은 기업을 인정해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기술 혁신성보다 재무적 안정성이 벤처기업 혜택을 주는 첫 번째 기준이 된 것이다. 현재 2만8629개 벤처기업 중 92.17%인 2만6388개가 대출이나 보증으로 벤처 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이 방식은 만들어질 때부터 “창업 초기 기업의 벤처 생태계 진입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현실적으로 창업 초기 기업의 재무 상태로는 대출이나 보증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조 분야 기업을 창업했다가 실패한 한 기업가는 “한정된 예산을 집행하는 기술보증기금에서 보증을 받기가 어렵고 투자자들의 관심은 모바일 분야에 쏠려 있어 사실상 벤처기업 혜택을 누릴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 기업’ 인증을 받는 방식도 있지만 필요에 상관없이 연구소를 설립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비중이 미미하다.

○ 기본으로 돌아가야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는 “벤처 생태계는 기본적으로 ‘고(高)위험, 고수익’의 속성을 가져야 하지만 정부의 현행 벤처 확인 방식은 ‘저(低)위험, 저수익’”이라며 “성장 정체를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혁신성이나 미래 가치보다 재무 상태를 중시하면서 ‘대박을 낼 기업’이 아닌 ‘망하지 않을 기업’에 벤처 인증을 해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간 매출 1000억 원 고지를 넘어선 벤처기업 중 2001년 이후 창업한 기업으로는 ‘카카오’가 유일하다. 1000억 원 매출은 벤처기업이 성공해 중견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상징이다. 카카오를 제외하면 IT 거품이 꺼진 후 ‘대박’을 터뜨린 기업이 한 곳도 없는 셈이다. 재무 상태를 중시하다 보니 벤처 자격을 획득하는 기업의 ‘평균 나이’도 8.5년으로 부쩍 늘었다. 전체 10곳 중 6곳 가까이가 창업한 지 5년이 넘는 기업들이다. 이 교수는 “2005년 이전의 확인 제도로 돌아가 고위험 고수익 속성을 되찾되 사후 관리를 강화해 도덕적 해이를 막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창업지원#벤처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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