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거 野]FA, 대박과 도박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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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를 붙잡기 위해 9개 구단이 쓴 돈은 523억5000만 원. 이전까지 최고액이었던 2011년 261억5000만 원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강민호(롯데), 정근우(SK→한화), 이용규(KIA→한화), 장원삼(삼성)은 역대 FA 몸값 1위였던 2005년 심정수(삼성)의 60억 원을 넘어서는 ‘FA 대박’을 터뜨렸다. 구단들의 과열 경쟁 탓에 선수들의 몸값에 ‘거품’이 끼었다는 지적이 나올 만도 했다.

▷올 시즌 전체 576경기 가운데 40% 가까운 218경기(37.8%)를 소화한 2일 현재 이들은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을까. 4년 동안 75억 원을 받기로 한 롯데 강민호부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강민호는 타율 0.229, 6홈런, 18타점, 출루율 0.320(57위)을 기록하고 있다. 타율과 득점권 타율(0.114)은 규정 타석을 채운 60명 가운데 꼴찌다. 반면 삼진은 49개로 3위다. 삼진 1위(52개)는 NC 나성범인데 그는 타율 0.356(6위), 홈런 13개(3위), 타점 44개(2위), 득점권 타율 0.472(1위)다. 물론 강민호가 도루 저지율 1위에 올라 있는 등 포수로서는 훌륭하다는 평가가 많다. 연봉 10억 원을 받는데 그마저 못하면 어떡할까. 나성범의 연봉은 7500만 원이다.

▷연봉으로만 따지면 8억 원으로 FA 가운데 2위인 LG 이병규(9번)의 성적표도 초라하다. 지난해는 타율 0.348로 타격왕을 차지했지만 올해는 1할 가까이 떨어진 0.250에 그친다. 이병규는 종아리 근육통으로 지난달 26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삼성 박한이도 아직까지는 본전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선수다. 지난해에는 타율-득점-타점-출루율이 모두 30위 안에 들었지만 올해는 모두 30위 밖으로 밀려났다.

▷몸값을 하는 선수도 있다. 삼성의 왼손 투수 장원삼이 대표적이다. 다승 공동 선두(7승)다. 한화가 137억 원을 쏟아 부어 영입한 정근우(70억 원)와 이용규(67억 원)도 제 몫을 하고 있다. 둘은 도루 23개(정근우 15개)와 3루타 7개(정근우 4개)를 합작하며 팀 도루의 62.2%, 팀 3루타의 63.6%를 책임졌다. LG에서 KIA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이대형도 지난해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할 가까운 타율(0.298)에 도루와 득점 모두 10위권이다. 두산에서 NC로 이적한 이종욱과 손시헌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실 있는 방망이와 안정된 수비로 NC의 돌풍을 뒷받침하고 있다.

▷과거에도 실패로 끝난 ‘FA 대박’은 많았다. 2004년 30억 원(4년)에 LG로 간 진필중은 3시즌 동안 3승 14패 15세이브에 그쳤고 처음으로 40억 원 시대(40억6000만 원·6년)를 연 롯데 정수근도 경기 외적인 문제로 숱한 구설에 오르며 두산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심정수는 계약 기간 4년 동안 평균 타율 0.254에 시즌당 15.8홈런, 50.1타점을 기록했다. 전성기였던 2003년의 타율 0.335에 53홈런, 142타점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선수들은 ‘FA 대박’에 활짝 웃지만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FA 도박’을 하는 구단은 속이 탄다. 매년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만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SK 최정 등 대어급이 많이 나오는 내년 FA 시장은 역대 최고액을 또 바꿔놓을 테니까.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FA#자유계약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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