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낙하산 중단-노동 개혁 빼놓은 경제혁신 불가능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6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에는 정부부터 혁신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이날 공공부문 개혁을 담화문의 첫머리에 올려 제시했으나 정부는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낙하산 방지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날에도 낙하산 인사를 했다. 정권이 내려보낸 선거공신과 관료들의 공공기관 취업은 놔두고 어떻게 공공기관을 개혁하겠다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공기업 부채가 늘어나고 방만 경영이 일상화한 것은 낙하산으로 내려간 사장과 임원들이 노조와 야합해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낙하산 인사에 대해 직접 전면금지 선언이나 사과를 하기는커녕,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국민에게만 개혁을 요구하면 불신만 커질 뿐이다.

공공연금도 공공개혁의 핵심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올해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액수만 3조8000억 원이 넘는다. 은퇴하고도 혈세로 편안한 노후를 누릴 만큼 공공부문이 ‘금밥통’이니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에 청춘을 바치는 것이다. 정부는 사학연금까지 포함한 3대 공적 연금 개혁을 어제 발표대로 내년 중에 관련 법 개정까지 마쳐야 한다.

경제 개혁에서 ‘태풍의 핵’이 될 노동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은 “열린 마음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자”는 원론적 언급만 했다. 어제 담화문에 포함시킨 ‘비정규직 해고요건 강화’ 방침은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 선진국의 노동시장 개혁과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인 29위였다.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유연성을 확대하지 않고 비정규직의 해고만 더 어렵게 해서는 청년층의 신규 고용이 갈수록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같은 취약 부문은 정부 지원으로 불합리한 임금 격차를 줄여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계약기간이 끝난 비정규직의 해고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운동 금지’를 선포한 뒤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장 재계에서 “기업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최근 세계 경제계에선 일본 아베노믹스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정치적 부담을 우려해 노동시장 개혁을 핵심으로 한 구조개혁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가 내세운 세 개의 화살 가운데 돈을 푸는 통화 확대와 재정 지출 등 두 개의 화살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세 번째 화살인 구조 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내수 확대로 연결되지 못해 빚만 키울 수 있다. 우리 경제도 내수 부진, 고령화, 생산성 저하 등 ‘일본화’의 길로 가는 상황이다. 노동경직성을 높인다면 ‘본질적 해결’을 피하고 고질병을 불치병으로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당초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발표하려다 박 대통령이 직접 담화문을 내놓은 것은 무게감을 싣기 위해서일 것이다. 대체로 옳은 정책을 백화점 식으로 나열했지만 일방적인 낭독으로 끝나 국민 공감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결국 기득권층의 저항을 극복하고 사회적 합의를 얼마나 이끌어내느냐에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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