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될 거라고? 힘내라고? 힐링장사 그만하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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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시인 하상욱씨 ‘서울 시’ 10만부 돌파

하상욱 씨가 자신의 책 ‘서울 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하상욱 씨가 자신의 책 ‘서울 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지켜/준다더니, 아껴/준다더니”

카드회사들의 개인정보 유출 소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지난달. ‘개인정보’라는 제목의, 총 12글자짜리 시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누리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시는 ‘SNS 시인’ 하상욱 씨(33)의 작품이다. 이 시만 그런 게 아니다. 그의 다른 시들도 짧으면 두 줄, 길어야 네 줄이다. ‘축의금’이란 시는 ‘고민/하게 돼, 우리/둘 사이’로 끝난다. 축의금 봉투를 앞에 놓고 얼마를 넣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깊이를 가늠해 보는,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음 직한 감정을 단 한 줄에 담은 것이다.

흡사 일본의 ‘하이쿠(일본의 단시)’를 연상케 하는 짧아도 너무 짧은 시. 그는 왜 이런 시를 고집할까. 그는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하려고”라고 했다. 무슨 뜻일까.

“140자가 넘거나 한 문장이 길어지면 휴대전화 화면에서 ‘더 보기’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독자들에겐 큰 불편인 셈이죠. 짧은 대신 시각적인 면을 고려했어요. 각 연의 글자 수를 동일하게 사용함으로써 대칭의 효과와 리듬감도 가미했죠.”

그의 시가 가볍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누리꾼은 ‘격하게’ 공감한다. 덕분에 그는 ‘공감 시인’이라고도 불린다. 2012년 7월 첫 작품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어떤 시는 ‘좋아요’가 300개나 눌러져 있었다. 전자책으로 4권을 냈더니 3개월 만에 10만 명이 내려받았다. 500여 편의 시를 모아 지난해 출간한 시집 ‘서울 시’ 1편과 2편은 10만 부 이상 팔려 나갈 정도다.

‘시가 재밌다’는 사람들의 평가를 그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정작 그 자신은 그 시를 ‘사람들을 울리기 위해’ 썼단다. 설명이 이어졌다.

“요즘 ‘힐링 열풍’은 ‘힐링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TV에서, 책에서 수많은 멘토들이 ‘힘내라’ ‘잘될 거야’라고 하는데, 전 그게 불만이에요. 꿈, 희망이라는 말이 듣기는 좋지만 뒤집어보면 현재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뜻 아닌가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합니다.”

그의 시는 이제 기업에서도 찾는다. 코카콜라, 11번가, BMW미니 등의 광고에 참여했으며 KT&G의 담배 케이스에 자신의 시를 카피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고등학교에서 초청해 학생들 앞에서 강연할 기회도 많아졌다. “사람들이 제게 붙여준 ‘작가’라는 이름도 하나의 지나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이직 같은 거죠. 그래도 계속 쓸 거예요. 마음 한구석을 푹 찌르는 것 같지만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후련한 느낌을 주는 시요.”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남영희 인턴기자 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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