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평론에서 톡톡 튀는 발문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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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집 맨 끝자락 해설란의 변화

시집이나 소설책의 맨 끝자리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이 공간의 주인은 주로 ‘해설’이었다. 평론가들이 작가의 문학세계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글이었다. 요즘은 작가를 잘 아는 문단 밖 필자들의 다양한 ‘발문(跋文)’으로 바뀌고 있다. 발문은 치밀한 해설보다는 자유분방한 후기에 가깝다.

지난달 나온 김숨의 소설집 ‘국수’(창비)에는 철학자 이병창(동아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발문이 실렸다. 작가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사이트에서 자신의 소설에 대해 쓴 이 교수의 글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됐다. 김숨은 “선생님이 내 소설을 꾸준히 읽어왔기에 해설보다는 철학자의 시각으로 부드럽게 쓴 글이 발문으로 들어가는 게 낫겠다고 여겼다. 발문이 새롭고 좋았다는 얘기를 여럿에게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말 발간된 김경주 시인의 에세이 ‘펄프극장’(글항아리)에는 대중음악평론가인 김봉현이 발문을 썼다. 김봉현은 ‘이 책은 세상 모든 얼간이에게 어깨동무하는 책이다. 모든 얼간이는 부디 이 책에서 휴식하기 바란다’고 적었다. 김경주 시인은 “김봉현은 오래전부터 시와 랩이 통한다는 주제의 작업을 함께 해온 친구다. 내 생각과 글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서 발문 필자로 선택했고, 문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새로운 시선을 확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씩씩한 소연아, 너의 새 시집이 슬픔으로 가득하구나. (중략) 너의 지금은 네가 가장 깊은 슬픔으로 짠 시간이기에 슬프다. 슬픔만이 진정으로 씩씩한 것을 만든다는 이 아이러니가 슬프다, 소연아.’

지난해 11월 나온 김소연 시집 ‘수학자의 아침’(문학과지성사)에 실린 발문의 일부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이 쓴 편지글 형식의 발문이 눈길을 끈다. 황현산은 “문단에서 이미 검증받은 작가의 경우 해설 같은 객관적인 평가보다는 비평가의 사적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면서 “어떤 장르의 글이든 여러 종류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윤병무 시집 ‘고단’(문학과지성사)에는 작가와 절친한 함성호 시인이 발문을 썼다. ‘사실 내가 아는데, 윤병무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은 건 아니고, 좀 있다. 이러저러한 스침도 들어서 아는데, (이곳을 펼쳐볼 필원 엄마에게 하는 말이지만) 결단코 그는 바람은 못 피울 위인이다.’

“최근 출간되는 시집의 절반가량은 해설 대신 동료 시인의 발문을 싣는 추세다. 현대시가 난해하고 상징적이다 보니 해설이 오히려 독자와 멀어지게 만든다는 자각이 시인들 사이에 일어났다. 창작자 입장에서 해설이 얼마나 필요하고 기능적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인식이 갈리는 시점이다.”(김경주 시인)

김경주 시인은 민음사에서 복간될 예정인 허연 시인의 절판된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의 발문을 새로 썼다. 그가 여러 인터뷰에서 군 복무 시절 수십 번 읽었다고 밝힌 시집이다. 발문에는 그 시집을 어떻게 만났고 왜 좋아했으며, 그 시집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시에 눈뜨게 됐는지를 담았다.

18세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국 작가 앤드루 밀러의 소설 ‘레지노상(Les Innocents)’(문학세계사)의 발문은 김숨이 썼다. 출판사 측이 작품 안에 흐르는 단단한 작가정신이 김숨과 잘 어울려서 부탁했다고 한다. 김요안 문학세계사 실장은 “독자들의 관심이 다변화하면서 작품을 입체적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시각이 발문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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