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이상화, 빅토르安, 新대자보 세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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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의 재능을 타고났다, ‘꿀벅지’의 힘이다, 속근(순간적 힘을 내는 근육)이 유난히 발달했다…. 소치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우리에게 첫 금메달을 안겨준 이상화 선수(25)에게 찬사가 쏟아진다. 1, 2차 합계 74초70의 동영상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올림픽 홈페이지 선수코너에 소개된 꿀벅지(Ggul Beok Ji)도 예쁘고 환한 미소도, 글썽거리는 눈물도 아름답다.

▷재능만 있으면 빙속 여제가 될 수 있을까. 이상화는 중학교 때 국제 친선경기에서 2등을 하자 “1등을 못해서가 아니라 목표 기록이 안 나와서”라며 분에 못 이겨 화장실에 박혀 울던 악바리였다. 슬럼프가 와도 핑계 김에 포기하지 않았다. 그냥 혼자 야간 운동을 했고, 다음 경기에서 또 성적이 안 좋아도 주저앉는 대신 또 달렸다. 아주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 좋아지는 변화가 오늘의 이상화를 만들었다.

▷1500m 동메달로 러시아 쇼트트랙에 첫 메달을 안긴 빅토르 안(29)을 보는 젊은 세대의 감정은 묘하다. 대한의 아들 안현수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기쁘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오죽했으면 한국을 버리고 러시아로 갔겠느냐” “국가가 내게 해준 게 없다는 젊은층의 분노가 안현수를 통해 터져 나온다”는 의견도 있다. 개인의 부상과 부진, 이를 포용하지 못한 사회와 풍토 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안현수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젊음은 ‘벽’ 앞에서 주저앉는 대신 새로운 날개, 러시아를 택해 빅토르 안으로 날아올랐다.

▷나이로 치면 이상화, 빅토르 안도 20대의 신(新)대자보 세대다. “안녕들 하십니까”로 촉발된 이들 세대는 자기계발을 강요받는 현실에 대한 피로, 계급 상승의 통로가 막혔다는 절망, ‘꼴통’ 기성세대와 사회에 대한 분노로 부글거린다. 누구에게나 가지 못한 길은 있다. 간절히 원하는 꿈을 위해 쉽고 편한 길 대신 가시밭길을 택하고, 슬럼프나 벽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그래도 안 되면 돌아가는 길을 찾는 점이 차이를 만드는 게 아닐까.

김순덕 논설위원실장 yuri@donga.com
#소치 겨울올림픽#스피드스케이팅#이상화#빅토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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