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의 힐링투어]일본 아키타∼니쓰 철도여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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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향해 아키타서 南으로… 정동진역 닮은 풍경 언뜻언뜻

유자와마치의 다카쓰쿠라 산(1181m)에 들어선 갈라유자와 스키장의 한 슬로프. 이시우치 마루야마 스키장에서 갈라유자와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유자와마치(니가타 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유자와마치의 다카쓰쿠라 산(1181m)에 들어선 갈라유자와 스키장의 한 슬로프. 이시우치 마루야마 스키장에서 갈라유자와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유자와마치(니가타 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동해는 두 나라를 아우른다. 우리와 일본이다. 속초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똑바로 헤엄치면 일본 혼슈의 서해안에 닿는다. 니가타 현이다. 그러니 이 위도를 기준 삼아 일본을 보면 니가타를 포함해 그 이북은 야마가타, 아키타, 아오모리 등 네 현이다. 이 중 ‘니가타 야마가타 아키타’만 따로 떼어내 일본서는 ‘우에쓰(羽越) 3현’이라 부른다. 메이지유신 이전 번주(藩主)가 전국 각 지방을 나누어 다스리던 때 아키타 야마가타 두 현에 걸쳐 있던 데와(出羽) 번, 니가타 현에 있던 에치고(越後) 번에서 한 자씩 따와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그 명칭은 철도 우에쓰혼센(羽越本線)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꼭 10년 전인 2004년 2월 20일. 나는 사카타(酒田)역(야마가타 현)에서 특급열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니가타 현의 무라카미 시. 이 77분간의 기차여행(107.5km)이 나를 사로잡았다. 42개 역(무정차 포함) 중 상당수가 ‘정동진역’이어서다. 우에쓰혼센은 이렇게 바닷가를 달린다. 그걸 지난달 다시 타게 됐다. 이번엔 북쪽 아키타 시에서 출발하는 일정. 때마침 혼슈 서해안에 큰눈이 내렸다. 덕분에 무리카미 역까지 2시간58분의 우에쓰혼센 철도여행은 ‘설국열차’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올해 1월 19일 오전 9시.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치장된 이나호 특급열차가 아키타 역 승강장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이나호(いなほ·稻穗)란 ‘벼이삭’이란 뜻. 열차의 노란 빛깔 때문인데 쌀로 이름난 우에쓰 3현을 관통하는 걸 상징한다. 붉은색은 동해로 지는 낙조 감상 열차임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출발 후 한 시간 반가량은 바다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유노다 온천(야마가타 현)에 이르자 그제야 바다가 오른편 차창으로 등장한다. 열차는 유자마치의 눈 평원을 지나더니 10시 59분 사카다 역에 들어섰다. 10년 전 취재 때 열차를 탔던 그 역이다. 아키타로부터는 104km 지점이다. 이나호가 주로 바다를 끼고 달리는 건 여기서부터. 마침 그날은 날씨가 궂었다. 낮고 짙게 드리운 구름 아래로 눈이 내리고 바람까지 거셌다. 그래서 바다는 방파제와 절벽에 거세게 부딪친 파도의 포말로 인해 눈밭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차창 밖으론 국도가 나란히 달렸고 그 너머론 동해의 강풍을 피하려는 듯 다닥다닥 붙여 지은 집들로 이뤄진 해안마을이 보였다. 철도는 가끔 해안의 높은 언덕 위를 달렸는데 그때마다 좌우로 넓게 동해의 바다와 해안선이 눈에 들어왔다. 또 가끔은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도 달렸다. 하얀 눈에 덮여 설원을 이룬 논이다.

▼ ‘설국’의 무대, 세계 스키 애호가들 몰려 ▼
스키천국 유자와마치


온통 눈에 덮여 눈세상을 이룬 니가타 시 외곽 들판의 우에쓰혼센 철도로 ‘설국열차’가 달리고 있다. 소설 ‘설국’의 고향 니가타 현을 이런 열차로 여행하는 건 이 겨울에 니가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다.
온통 눈에 덮여 눈세상을 이룬 니가타 시 외곽 들판의 우에쓰혼센 철도로 ‘설국열차’가 달리고 있다. 소설 ‘설국’의 고향 니가타 현을 이런 열차로 여행하는 건 이 겨울에 니가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다.
우에쓰혼센을 달리는 이나호 특급열차의 차창을 통해 바라다보이는 일본 혼슈 해안 니가타 현의 어촌마을. 세찬 바람에 일어난 파도의 포말로 바다의 수면마저도 마을 지붕처럼 눈에 덮인 듯 하얗다.
우에쓰혼센을 달리는 이나호 특급열차의 차창을 통해 바라다보이는 일본 혼슈 해안 니가타 현의 어촌마을. 세찬 바람에 일어난 파도의 포말로 바다의 수면마저도 마을 지붕처럼 눈에 덮인 듯 하얗다.
니가타 현의 유자와마치(미나미우오누마 군)는 ‘설국’(雪國)이다. 눈이 워낙에 많이 내려서다. 하룻밤에 2m가 쌓이는 날도 있다. 덕분에 101년 전부터 스키를 탔는데 한때 스키장이 85개나 있었다. 지금은 12개로 줄었지만 연간 스키방문객은 500만 명이나 된다. 노벨문학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유키구니)의 무대도 여기다. 이 소설을 쓴 료칸 다카한(高半)도 유자와마치에 있다. 지금까지 그의 객실을 보존하고 있다.

이곳은 동편 에치고 산맥과 서편 산악에 갇힌 길고 좁은 계곡. 그게 20km가량 이어지는데 스키장은 그 13km 구간에 산재한다. 지형이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알베르크 계곡(티롤 주)을 닮았다. 알베르크 계곡은 인스브루크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로 상트안톤 레흐 상트크리스토프 등 스키마을이 몰려 있는 곳.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56년 겨울올림픽(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개최)에서 세계 최초로 알파인스키 전관왕(금메달 3개)에 오른 토니 자일러(1935∼2009)가 이곳 이시우치마루야마 스키장을 방문(1957년)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유자와마치에는 그런 스키역사를 증명하듯 신칸센 역사(驛舍)를 스키센터로 삼은 특별한 스키장이 있다. ‘갈라(GALA)유자와’인데 조에쓰신칸센(니가타∼도쿄)의 에치고유자와 역(유자와마치 중심)에서 분기한 갈라유자와센(1.8km)의 종점역이다. 스키장∼도쿄를 오가는 신칸센이 하루 12편(80분 소요)인데 고객의 절반이 이걸 이용한다. 이들은 대부분 외출복 차림으로 와서 옷과 장비를 빌려 스키를 즐긴 뒤 편안하게 신칸센을 타고 돌아간다.

갈라유자와는 이웃한 스키장 두 개를 연계한 ‘3산’(山)형. 남쪽으론 유자와고겐, 북쪽으론 이시우치마루야마 스키장으로 연결된다. 세 스키장은 눈의 질도, 지형도 제각각 다르다. 3산공통권(4900엔)을 사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유자와고겐의 스키 베이스인 ‘누노바’는 1913년 문을 연 이 지역 최초의 스키장, 이시우치마루야마엔 레르히 소령(오스트리아)의 지도로 알파인스키를 니가타에서 처음 시작하고 75주년(1986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 있다.

갈라유자와 스키장: JR간토지역패스(JR Kanto Area Pass)를 이용하면 신칸센 이용요금을 5000엔가량 절약한다. 영어스키강사도 있다. 폐장은 5월 6일. www.galaresort.jp

▼ 연어 성지 ‘바람의 맛’ 일품… 세나미 온천서 동해낙조 감상 ▼
니가타 외곽 해안도시 무라카미


겨우내 북서풍을 쐬며 말리는 염장연어. 한겨울 무라카미 시내에서 흔히 만나는 독특한 풍경이다.
겨우내 북서풍을 쐬며 말리는 염장연어. 한겨울 무라카미 시내에서 흔히 만나는 독특한 풍경이다.
무라카미의 연어전문식당 지도리의 사케데이쇼쿠 상차림.
무라카미의 연어전문식당 지도리의 사케데이쇼쿠 상차림.
무라카미(上村)는 니가타 시내에서 한 시간쯤 떨어져 있는 해안도시. 지난 18년간 여길 네 번 찾았다. 연어요리와 술, 거기에 동해낙조를 로텐부로(노천온천탕)에서 감상하는 세나미 온천을 찾아서다.

무라카미의 미오모테 강은 일본에선 ‘연어성지’다. 이미 18세기에 샛강을 조성해 연어가 쉽게 산란과 수정을 하도록 유도(세계 최초)한 덕분. 암컷을 잡아 알을 채취한 뒤 수컷의 정액을 뿌려 인공 부화 시키는 방식도 일본에선 여기가 발상지다.

그런 만큼 무라카미는 연어요리가 다양하다. 이번엔 61년 역사의 전문식당 ‘지도리’에서 ‘사케 데이쇼쿠’(연어정식)를 맛보았다. 주인 다케우치 마코토 씨가 아들과 함께 만든 상차림엔 연어의 머리 볼(아가미) 심장 몸통 등 다양한 부위를 갖가지 방법으로 조리한 음식들이 올라왔다. 9∼12월 연어 철엔 열다섯 가지 요리를 낸단다.

연어는 일본 술 사케(청주)와 잘 어울린다. 일본어로 술과 연어는 발음이 ‘사케’로 똑같다. 그 연어안주 중 최고는 ‘사카비타시’(염장건조연어)다. 짭쪼름한 연어포를 비스듬히 저며 접시에 담아내는데 먹기 직전 사케를 살짝 뿌려 노글노글하게 만드는 게 핵심. 사케와 사케의 절묘한 만남이다. 맛의 핵심은 한겨울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계절풍. 얼다 녹기를 반복하며 1년간 말리는데 10kg짜리가 3∼4kg까지 줄어든다. 우리의 황태와 어란 만들기를 연상케 한다.

만드는 과정을 보러 시내 연어전문상점 깃카와(吉川)로 갔다. 주인 깃카와 뎃쇼 씨(79)는 평생 이 일을 해온 장인. 그는 사카비타시야 말로 무라카미에서 말려야 제맛이 난다고 했다. ‘가제노아미(風味·풍미)’ 덕분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바람의 맛’이다. 연어 말리기는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 걸어두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연어의 배를 한 번에 쭉 가르지 않고 중간에 붙어 있는 부분을 둔다는 것(도메바라·二分割). 일본 문화의 그늘 중 하나인 ‘할복’을 연상시키지 않도록 배려한 무라카미의 전통이다. 이요보야(연어의 이 지역 사투리)회관은 연어박물관.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광경을 수중에서 볼 수 있게 만든 실물수족관도 있다.

사카비타시는 무라카미 사케와 맛봐야 제격. ‘다이요자카리’라는 술(다이긴조)로 이름난 다이요(大洋)주조에선 니가타 현이 자체 개발한 주조용 쌀 고시탄레이로만 빚는다. 이 쌀은 탄수화물이 적어 술맛이 드라이(dry·달리 않음)한 담려(淡麗·단레이)함이 특징. 손님이 직접 레이블을 붙인 빈 병에 겐슈(元酒·식용알코올과 물을 섞지 않은 양조원액)를 즉석에서 담아 판다.

해변의 세나미 온천도 무라카미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다이칸소는 동해 낙조와 바다 풍광을 가장 멋지게 조망할 수 있는 최고급 료칸. 로텐부로(노천탕)에 몸을 담근 채 석양과 노을을 즐기는 호사가 보장된다. 다이칸소에서 저녁식사로 내는 가이세키 요리도 일품이다. 아침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통유리창 식당에서 뷔페를 즐길 수 있다.

무라카미 시: △관광협회 www.sake3.com △기카와 www.murakamisake.com △이요보야회관 www.iwafune.jp/∼iyoboya/ △다이칸소(大觀莊) www.taikanso.senaminoyu.co.jp △세나미온천료칸협동조합 www.senami.or.jp

■Travel Info

우에쓰혼센: 아키타(아키타 현)∼니쓰(니가타 현·무라카미로부터 59.4km 남쪽)를 잇는 JR동일본의 철도(271.1km). ▽이나호 특급열차: 해 질 녘에 타면 ‘동해 해넘이’란 아주 특별한 볼거리도 즐긴다. 바다를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구간은 아쓰미온천∼무라카미(50km)

JR동일본: 050-2016-1603(한국어 안내).

관광정보: ▽아키타 현 △아키타 시: 역 구내 관광안내소(영어 대응) http://akitacity.info △아키타 현: www.akitafan.com www.akitafan.or.kr(한글). 한국코디네이터 사무소 02-3473-5822 △니가타 현: http://enjoyniigata.com/korean/

여행상품

일본 온천 료칸과 스키여행을 전문으로 해온 에나프투어(www.enaftour.co.kr)는 니가타∼아키타의 우에쓰혼센 ‘설국열차’를 테마로 온천과 스키를 즐기는 겨울상품을 내놓았다. 세나미온천(무라카미)에서 휴식하는 3박 4일은 94만9000원, 유자와마치에서 스키를 즐기는 4박 5일형은 109만9000원. 열차패키지 이용자에겐 사케 소비 전국 1, 2위의 두 현에서 생산된 사케도 선물한다. 스키투어 참가자에겐 니가타 현청 설문지에 답할 경우 1만 엔과 더불어 1박당 2000엔(현 내 숙박) 혹은 3000엔(니가타 시내숙박)의 지원금을 제공(여행상품에 반영)한다. 02-337-3070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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