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고달프다]보여주기에만 급급… 구직자들 난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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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스펙 타파” 취지는 좋았으나…

취업준비생 A 씨(30)는 올해 설 연휴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한국마사회 입사 전형 때문이었다. 한국마사회는 설 연휴 첫날인 지난달 30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실시간 온라인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다.

한국마사회는 1차 서류전형 대신 다양한 미션 수행을 통해 지원자의 실력과 열정을 검증하는 이른바 ‘스펙 초월 소셜리크루팅’ 방식을 올해 처음 도입했다. A 씨는 총 10일에 걸쳐 온라인상으로 4개의 인성과제, 2개의 창의과제를 수행하고 다른 지원자 10명의 과제 60개를 평가해야 했다. 인성과제의 주제는 ‘나의 꿈과 나의 비전’ 등이었고 창의과제는 ‘남북통일에 따른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창의적으로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전형을 마친 A 씨는 “전형이 진행된 10일 동안 다른 일에 전혀 손을 댈 수 없었다”며 “필기와 면접 준비만으로도 벅찬데 1차 전형 준비의 부담이 너무 커졌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지원자의 ‘스펙’ 대신 ‘능력’ 중심으로 인력을 채용한다는 ‘스펙 초월’ 전형이 확대되고 있다. 스펙 초월 전형에 지원하는 구직자는 서류 전형 없이 주어진 과제 수행을 통해 인·적성 및 직무능력을 평가받는다. 7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4년 공공기관 인력운영 추진계획’에 따르면 한국동서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석유공사 등 12개 기관이 올해부터 ‘스펙 초월’ 전형으로 인턴을 선발한다. 선발된 인턴 중 최소 70%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새로운 채용 방식 도입에 대해 청년 구직자들은 불만을 드러냈다. 기존의 ‘스펙’을 평가기준에서 배제해 기회의 문을 넓혔지만 구체적인 평가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더 큰 혼란을 야기하고 부담만 커졌다는 것이다. 온라인 취업 커뮤니티상에는 “차라리 서류 전형이나 필기 전형이 낫겠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완전 보여주기식 전형이다” 등 구직자들의 불만이 올라오고 있다. 청년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잡코리아의 여론조사 결과 스펙 초월 채용을 찬성하는 의견은 39.9%에 그쳤다. 반대 이유로는 △객관적 평가기준이 없어 채용비리가 늘어날 것 △발표 능력이 뛰어나거나 외향적인 사람에게만 유리 △취업 사교육비 부담 증가 등을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스펙 초월 전형의 성급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철저한 직무분석과 공정한 평가기준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스펙 초월 전형은 자칫 기업들의 자의적인 선발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으면 구직자들의 혼란과 불안만 부추길 수 있다”며 “예측 불가능한 채용 전형은 사회적 비용만 높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취업#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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