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새누리당 ‘기초선거 공천’ 미련 버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에 대한 정당의 공천은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많다. 정당 공천을 금지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을 택하든 위험 부담이 따른다. 결국 정당 공천의 유지냐, 폐지냐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우리보다 풀뿌리 민주주의 역사가 훨씬 긴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봐도 결론은 비슷하다. 미국은 각 지방정부가 정당 공천의 허용 여부를 정한다. 처음엔 정당 공천이 대세였지만 그에 따른 폐해가 막심하자 공천을 배제하는 지방정부가 점차 늘어났다. 지금은 전체 지방정부 가운데 4분의 3 정도가 공천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은 정당 공천을 허용하지만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영향력은 미미한 편이다. 2011년 지방선거의 경우 기초단체장 당선자의 99.8%, 기초의원 당선자의 72%가 무소속이었다. 지방자치에서 생활정치가 강조된 결과다. 정당들이 자기네 후보를 공천하는 대신 괜찮은 무소속 후보를 골라 추천 형식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국회 입법조사처 자료).

새누리당은 정당 공천을 유지해야 한다는 쪽이다. 공천에 따른 문제보다는 공천을 금지할 경우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이유에서다. 공천의 폐단은 오픈프라이머리(개방형 경선제)의 도입과 공천 비리 관련자의 엄단 같은 보완책을 마련하면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당 공천 금지 시 위헌(違憲) 가능성도 제기한다. 일면 수긍이 가는 얘기다.

그러나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과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공천 폐지를 공약할 때 같이 폐지를 약속해 놓고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보완책이 어떻고, 위헌이 어떠니 해봐야 우선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데다 변명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하지만 기초선거 정당 공천 문제를 정략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숨기지 못한다. 두 당은 곧 다가올 6·4지방선거는 물론이고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까지 염두에 두고 유·불리를 저울질하고 있다. 공천을 폐지하면 현역 프리미엄 때문에 현재 수도권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절대 다수를 장악한 민주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미래’일 뿐이다. 반면에 공천 폐지 약속을 뒤집으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당장 국민의 불신을 받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두고두고 시빗거리가 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을 지탱시켜 주는 중요한 정치적 자산인 신뢰에 금이 간다면 국정을 꾸려가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자신의 능력보다는 박 대통령의 후광 효과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지지도도 동반 추락하면서 각종 선거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오랜 정치의 역사에서 보면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을 때 쉬운 길보다는 어려운 길, 자신에게 유리한 것보다는 불리해 보이는 것을 택하는 게 뒤탈이 적다. 정당 무(無)공천의 공약 이행은 새누리당에 어려운 길이자 불리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손해 볼 줄 뻔히 알면서 감당하는 것이 진정한 희생이고, 큰 정치다. 정당 공천을 금지할 경우 위헌 시비가 제기될 소지가 없지 않으나 사전에 여야가 함께 위헌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나중에 행여 위헌 결정이 나더라도 정치권이 공동 대처하면 된다. 정당 무공천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하면 그때 가서 다시 손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 앞에서 한 약속에 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다. 수시로 말을 바꾸는 정치에 국민은 신물이 나 있다. 새누리당이 정당 공천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기초선거#공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