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슈퍼맨은 언제쯤 우리를 구하러 올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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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연말 연초가 되면 미래에 대한 추측이 난무한다. ‘2014’나 ‘2020’ 같은 시점을 앞세우고 경기, 시장, 기술, 주식 같은 주제어를 넣은 뒤 전망, 예측, 트렌드 같은 단어를 붙인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오늘 내일의 일기예보를 확인하듯 연말 연초에 1년을 짐작해 보고 준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습관이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2020’ 같은 중장기 예측은 물론이고 올해의 전망도 막연하거나 뻔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불과 몇 시간 뒤의 날씨조차 맞히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지 않는가? 그러나 미래 예측의 기술적인 한계를 이해하면 불만스럽던 일기예보의 정확도가 꽤 높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 신뢰도가 가장 높은 게 기술이다. 기술은 발전 방향과 속도에 대해 어느 정도 근거를 가지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어의 법칙을 보자. 반도체 메모리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1947년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이래 지금까지 잘 들어맞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관련 기술, 제품, 시장에 대해서도 전망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예측은 이 같은 근거를 토대로 추세 분석, 모델링, 델파이, 전문가 의견, 시나리오 기법을 동원해서 스마트 로봇, 대체에너지, 양자컴퓨터 같은 첨단 기술이 어느 시점에 시장에 등장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정부나 기업은 이를 토대로 기술지도(Technology Roadmap)를 그리고 중장기 계획을 세운다.

이런 기술예측은 공급의 측면에서 미래를 내다본다. 언제 어떤 기술이 필요할 것이라는 수요(시장조사)의 측면이 아니라 그 시점에 등장할 것 같은 기술을 먼저 또는 싸게 공급(개발)하는 전략을 세우기 위한 예측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따라잡는 전략을 세우는 데는 공급 위주의 기술예측이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에서 시장선도자(First Mover)로 변신하려면 수요 측면의 기술예측을 병행해야 한다.

짜증 나는 미세먼지나 황사를 해결하는 기술은 언제쯤 나올지, 몇 년마다 겁을 주는 조류인플루엔자(AI)는 몇 년 뒤에 해결할 수 있는지, 해양 기름 유출사고는 언제쯤 걱정하지 않아도 될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황사가 오면 잠시 마스크를 쓰면 되고, AI가 창궐하면 당분간 조심할 수 있으며, 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하면 낙심한 어민들을 걱정할 수 있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답답한 것이다. 일기예보 수준을 따라가지 못해도 좋으니 대략 언제쯤 어떨 것이라는 전망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관련 기업이나 종사자가 대책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해양수산부가 ‘적조 대응 중장기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여름마다 반복되는 적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보 기능을 강화하고 피해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며 양식어장의 구조를 개편하는 작업을 2018년까지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문제 해결형 기술’이다.

기술을 위한 기술예측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기술예측이 필요하다. 언제 어떤 첨단 기술이 등장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보다는 국민이 필요로 하는 기술이 언제 개발될 것이라는 흐뭇한 전망이 필요하다. ‘기술예측’이라고 하든 ‘기술예보’라고 하든….

같은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슈퍼맨(기술)은 도대체 뭐 하고 있나? 슈퍼맨이 어떤 초능력을 갖고 있느냐가 궁금한 게 아니라 언제쯤 우리를 구하러 올까 하는 것이 더 궁금하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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