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신라금관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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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의 천마총에서 출토된 6세기 금관(국보 188호). 신라 금관은 화려하고 세련된 디자인뿐만 아니라 비밀스럽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까지 담고 있어 많은 사람을 매료시킨다. 동아일보DB
경북 경주의 천마총에서 출토된 6세기 금관(국보 188호). 신라 금관은 화려하고 세련된 디자인뿐만 아니라 비밀스럽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까지 담고 있어 많은 사람을 매료시킨다. 동아일보DB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코너가 있습니다. 바로 신라 금관 앞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금관을 별도의 공간에 멋지게 전시해 놓았지요. 세련된 디자인, 화려한 장식 그리고 황금빛 찬란함…. 박물관에서 금관을 보고 그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만 금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최근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린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에서도 신라 금관은 미국인들을 사로잡았어요. 우리 문화재가 해외에서 전시될 때마다 금관은 최고의 인기를 누린답니다.

○ 황금의 나라, 신라

현재 우리나라에 전하는 고대시대의 순금제 금관은 총 8점. 이 가운데 6점이 5, 6세기 신라 것이고, 나머지 2점은 가야의 금관입니다. 충남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에서 금제 관장식이 나왔으나 금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령왕의 금제 관장식은 비단 등으로 만든 모자의 옆에 꽂아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라 금관은 경주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관(5세기, 국보 191호), 금관총 출토 금관(5세기, 국보 87호), 서봉총 출토 금관(5세기, 보물 339호), 금령총 출토 금관(6세기, 보물 338호), 천마총 출토 금관(6세기, 국보 188호), 교동고분 출토 금관(5세기)입니다. 모두 경주 시내에 있는 대형 신라고분에서 나온 것들이지요. 이들 고분에서는 금관뿐만 아니라 금제 허리띠, 금제 귀고리와 목걸이 등 다양한 금제 공예품들이 나왔습니다. 신라를 두고 황금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랍니다.

○ 금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금관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금관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을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금관은 신라 왕이 머리에 썼던 것으로 생각하지요. 과연 그럴까요?

신라 금관은 모두 5, 6세기 것입니다. 금관의 주인이 왕이려면 금관이 출토된 고분이 왕의 무덤이어야 하는데, 신라의 5, 6세기 고분 가운데 왕의 무덤으로 명확하게 밝혀진 경우는 없습니다. 왕릉임을 입증하는 유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에 가면 황남대총이 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황남대총(동서 80m, 남북 120m, 높이 23m)은 남북으로 무덤 두 개가 붙어 있는 쌍분입니다. 1974년 발굴을 했고 그때 나온 출토 유물로 보아 남쪽 무덤은 남성의 무덤이고 북쪽 무덤은 여성의 무덤으로 확인됐습니다. 부부의 무덤이라는 말이지요. 흥미로운 사실은 여성의 무덤인 북분에서 금관이 나왔다는 점입니다. 남성의 무덤에서는 이보다 급이 떨어지는 금동관이 나왔어요. 그럼 혹시 여왕의 무덤일까요? 이 무덤이 축조된 5세기 전후 신라에 여왕이 없었으니 황남대총은 여왕의 무덤일 수 없습니다. 황남대총 금관의 주인공이 왕비일 수는 있어도 왕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금령총에서 나온 금관은 크기가 작습니다(높이 27cm, 테 지름 15cm). 성인용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 주인공이 어린아이라면 아마 왕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라 금관 6점의 주인공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여성이나 어린이가 그 주인공이라는 정도만 밝혀졌을 뿐이지요. 물론 정황상으로 보아 왕이 금관의 주인공이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 평소 금관을 머리에 썼을까요?

이번엔 금관의 용도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흔히 ‘금관이니까 모자처럼 머리에 썼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신라 왕이 금관을 모자처럼 머리에 썼다는 기록이나 물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금관의 발굴 당시 모습을 볼까요? 신라 금관은 죽은 사람(무덤의 주인공)의 얼굴을 모두 감싼 모습으로 출토되었습니다. 금관의 아래쪽 둥근 테는 무덤 주인공 얼굴의 턱 부근까지 내려와 있어요. 그리고 금관 위쪽 세움 장식(나뭇가지나 사슴뿔 모양)의 끝이 모두 머리 위 한 곳에서 묶인 채 고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즉 모자처럼 이마 위에 쓴 것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뒤집어씌운 모습으로 발굴된 것이죠. 이는 신라 금관이 실용품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일종의 데드 마스크였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금관은 매우 약합니다. 지나치게 장식이 많아 실용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말이지요. 금관은 얇은 금판을 길쭉하게 오려 그것들을 서로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관테에 고정시킨 세움 장식이 너무 약하고 불안정해요.

금관을 눈여겨보면 마감이 그리 깔끔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왕이 사용하는 것이었다면 정교한 금목걸이와 금귀고리를 만들었던 신라의 장인들이 마감을 엉성하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실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사후(死後) 부장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지요. 금관의 주인공이 세상을 떠나자 무덤에 부장하기 위해 서둘러 만들다 보니 이렇게 된 것 아닐까요?

신라 금관에는 이렇게 복잡하고 신비로운 얘기가 담겨 있답니다. 그렇기에 금관은 더더욱 매력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지요.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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