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단일화 프레임은 던져버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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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정치부장
정연욱 정치부장
안철수를 향한 민주당 인사들의 구애는 절절하다 못해 안쓰러울 정도다.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 이를 통한 후보 단일화가 안 되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라는 위기감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야권연대만이 살길이라는 절박감이 묻어난다.

안철수는 “연대론은 정당이 스스로 이길 수 없다는 패배주의적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다. 17일 창당 발기인대회를 한다는 일정까지 공개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서 앞날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독자 정당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민주당은 2012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연대, 후보 단일화 얘기를 되풀이했다. 총선에선 그동안 걸어오고, 지향한 길이 엄연히 다른데도 통합진보당과 손만 잡으면 이긴다는 확신에 사로잡혔다. ‘묻지 마 연대’ 바람에 ‘노무현 정신’은 사라졌다. 노무현의 적자(嫡子)를 자처하던 이들이 노무현 정부의 상징이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자고 목청을 높였다.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졌지만 정작 무엇을 반성하고 혁신했는지 기억나는 게 없다.

새해 들어 민주당 일부 ‘386’ 의원들이 당 혁신의 깃발을 든 것은 늦었지만 반길 일이다. 이들은 ‘시민에게 열린 정당’으로 변신해야 한다며 시민 참여 정당 시스템을 제안했다. 하지만 혁신의 지향점은 모호해 보인다. 시민 참여 정당은 친노(친노무현)가 2년 전 민주당을 장악했을 때 모델이었다. 그 무렵 시민 참여를 명분 삼아 도입된 모바일 투표는 친노의 전매특허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러니 일부 ‘386’그룹의 요구가 김한길 대표를 견제하려는 범친노 진영의 속내를 대변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주변엔 민주와 진보, 시민 참여 등 선명한 포장지만 두르면 ‘만사형통’이라는 생각이 짙게 깔린 것 같다.

민주당 ‘386’그룹의 원로 격인 김영춘은 지난달 “민주당 혁신은 북한테제 발표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북한의 김정은 3대 권력세습 체제와 장성택 처형의 야만성을 지적하지 않고 외면한 것은 수구적 진보라고 질타했다. 북한 민주화 이슈는 보수 진영의 ‘트로이 목마’일 뿐이라는 낡은 생각을 허물지 않고는 혁신의 물꼬를 틀 수 없다는 얘기다. 당 혁신은 “지금은 집토끼를 지켜야 할 때”라는 안이한 현실에서 벗어나 금기(禁忌)의 벽을 깨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안철수는 야권 세력의 ‘삼분지계(三分之計)’ 전략을 내놓았다. 민주당의 중도보수 그룹과 친노, 안철수 세력이 3각 혁신 경쟁을 벌이자는 것이다. ‘묻지 마’ 방식의 야권연대는 ‘파이’를 키우지 못했다. 혁신 경쟁이 성공하면 범야권 지지층은 더 커지고 야권 지형 재편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 범야권의 ‘헤쳐 모여’도 예상할 수 있다. 2017년 대선을 내다보는 안철수의 눈은 벌써 이곳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1997년 대선에서 집권에 성공한 김대중은 처음부터 단일화를 얘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보수 세력의 공세를 피하기 위해 “중산층을 겁나게 하는 학생들의 과격시위에 대해 정부는 단호히 충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994년엔 평생 정적이었던 박정희 추도위원회 고문직을 수락하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도 자제했다. ‘원조 보수’인 김종필과 손잡는 ‘DJP 연합’은 중도 전략의 정점이었다. 단일화 연대에만 매달리는 민주당의 생각은 우선순위가 잘못됐다. 범야권 재편의 지각 변동은 시작됐다. 민주당은 치열한 자기 혁신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반성문을 먼저 써야 한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
#야권단일화#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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