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익 급감에 ‘우산’ 접으려는 은행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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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주요 시중은행들의 순이익이 지난해보다 2조 원 가까이 줄어들면서 기업 구조조정 작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영수지가 나빠진 은행들이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에 난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수백∼수천억 원의 자금을 쏟아도 2, 3년은 지나야 자금 투입의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당장 수익성을 높여야 할 은행으로서는 돈줄을 죌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당국의 압박으로 마지못해 지원하다가 상황이 나빠지자 발을 빼는 것은 ‘비 오는 날 우산 뺏기’의 전형적인 행태라는 지적도 나온다.

○ 은행권 순익 2조 감소… 구조조정 기업 타격

2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상장 은행지주사 6곳(KB 우리 신한 하나 BS DGB)과 IBK기업은행의 올해 실적을 예상한 결과 순이익은 총 6조7921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연말(7조8019억 원)과 비교하면 순이익이 1조98억 원 감소한 것. KDB산업은행과 NH농협은행 등을 포함하면 올해 은행권 순이익은 전년 대비 2조 원가량 감소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문제는 은행권 경영수지 악화로 구조조정 중인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 기업이 쌍용건설. 채권단은 올 6월 워크아웃을 결정하면서 투입하기로 한 자금(4450억 원) 중 1200억 원의 지급을 미루고 있다.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처한 쌍용건설이 5000억 원의 추가 지원(출자전환 포함)을 요청했지만 채권단은 자금지원은커녕 기업 재무구조 개선(워크아웃) 중단도 검토하고 있다. ‘생존이 불분명한 회사에 손실을 감수하며 지원하는 것은 배임’이라는 게 채권단의 생각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 수주가 생존을 결정하는 쌍용건설 입장에서는 상장이 폐지될 경우 기업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며 “애초 맺은 자금지원 약속도 지키지 않으면서 워크아웃까지 중단하겠다는 은행들의 처사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STX조선해양 구조조정도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채권단과 회사 측은 자율협약을 맺으면서 내년까지 3조 원을 지원해 주기로 약속했지만 정밀실사 결과 추가로 1조8000억 원이 더 들어가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채권은행의 한 관계자는 “STX 때문에 올해 수천억 원의 부담이 발생했는데, 여기에 자금을 더 부으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한두 개의 기업이 은행 전체를 휘청거리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구조조정, 책임회피식 자세는 곤란”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당국의 어정쩡한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STX와 쌍용건설의 경우 금융당국이 국가경제와 고용 등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지원을 유도했지만 예상보다 더 큰돈이 들어갈 상황이 되자 사실상 채권단에 판단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STX조선 채권은행의 부행장은 “애초 금융당국이 압박해 놓고, 막상 부실이 더 드러나자 소극적 태도로 돌아서 배신감마저 든다”며 “살려야 할 기업만 회생시킨다는 구조조정의 대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의 책임회피식 소극적 지원이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기업을 확실히 살릴 만큼 지원하지 않고 단기적 손실을 문제 삼아 지원을 끊는 것은 문제라는 것.

남창우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기업 구조조정은 타이밍을 놓칠 경우 자칫 부실이 더 커질 수 있다”며 “구조조정의 원칙을 확실하게 세운 뒤 채권은행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은행#자금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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