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전한 ‘특경비 쌈짓돈’ 관행은 힘센 기관의 특권의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1일 03시 00분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헌재 재판관 시절 월 400만 원의 특정업무경비(특경비)를 개인 용도로 쓴 정황이 논란을 빚자 사퇴했다. 특경비란 수사 감사 예산 등 특정한 업무 수행에 들어가는 경비를 조직 또는 사업 단위별로 편성하도록 한 나랏돈이다. 공직자의 불투명한 예산 집행과 도덕적 해이가 문제되자 기획재정부는 ‘특경비는 지출 증빙 첨부가 곤란한 경우 지급 명세에 일자 금액 사유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라’고 2월 1일 각 기관에 통보했다.

감사원이 참여연대의 12개 기관 특경비 감사 청구에 따라 감사한 결과 헌재와 대법원 국회 경찰청의 특경비 지출이 여전히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헌재는 정부 지침이 내려온 다음인 올 1분기에도 재판부 운영비, 판례 심사 활동비 등 4개 항목 집행액 1억6549만 원 중 59.6%를 부실하게 관리했다. 같은 기간 대법원도 27억7230만 원 중 79.8%를 경비 집행의 정당성을 알 수 없는 현금수령증 등으로 처리했다. 국회도 5억6778만 원을 증빙자료 하나 없이 지출 내역서만 제출했다. 경찰청은 특경비 월정액 한도 30만 원을 초과하는 부분을 법정수당으로 바꾸지 않아 소득세법을 위반했다.

감사원과 기재부 지침에도 불구하고 논란의 단초가 된 헌재, 이 후보자를 낙마시킨 국회는 물론이고 대법원과 경찰청까지 비정상적 관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무슨 배짱인가. 힘센 기관들의 비뚤어진 특권의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는 이동흡 후보자 논란이 거셀 때 “정부는 이 후보자 청문을 계기로 권력자들이 쌈짓돈처럼 써 온 특경비 제도를 투명하고 엄정하게 재정비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1월 24일자 사설). 참여연대가 감사를 청구하지 않았더라면 정부가 개선책을 발표했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감사원은 어제 “각 기관이 잘못을 바로잡지 않을 경우 기재부 장관은 관련 예산을 줄이라”고 통보했다. 증빙자료 없이 지출 명세만 있는 특경비를 아예 인정하지 말아야 특경비를 쌈짓돈으로 여기는 공직자들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특정업무경비#이동흡#불투명#관행#특권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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