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재명]“원조도 투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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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괴물 태풍 하이옌이 휩쓸고 지나간 필리핀은 통곡의 땅으로 변했다. 전 세계에서 성금이 몰렸다. 그러나 중국은 달랑 10만 달러(약 1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필리핀이 모욕을 느낄 정도로 적다”고 꼬집었다. 미국은 2000만 달러를 내놨다.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 혼자 쾌척한 성금이 10만 달러였으니 중국은 3회전 공중점프 뒤 엉덩방아를 찧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중국은 뒤늦게 164만 달러의 구호물품을 더 내놨다.

▷머쓱해지기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정부는 애초 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외국지원금으로 쓸 돈이 바닥 났다고 했다. 중국보다 50배나 많았지만 필리핀이 어떤 나라인가. 6·25전쟁 때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 5개 전투대대(7420명)를 보내 한국을 지켜준 우방국이다. 너무 인색하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2000만 달러를 더 지원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통 크게 미국보다 많은 2500만 달러를 내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국은 2009년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면서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 1960년 DAC 창설 이후 첫 사례다. 하지만 우쭐하기엔 이르다. 올해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2조600억 원. 국민총소득(GNI) 대비 0.15%다. DAC 회원국 24개국 가운데 22위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24개국 중 10위인데도 말이다.

▷정부는 2015년까지 GNI 대비 ODA 비율을 0.2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내년 예산에 반영된 ODA 비율은 0.16%에 불과하다. 외교부는 어제 2015년 ODA 비율 목표치를 0.20%로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당장 나라살림이 어려운데 무작정 외국을 도우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ODA는 돕고 끝나는 돈이 아니다. 우방국을 넓히는 투자이자 소프트파워 외교의 근간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하나가 또다시 후퇴한 듯싶어 아쉽다.

이재명 논설위원 egija@donga.com
#필리핀#태풍#성금#구호물품#원조#ODA#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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