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빨리 팔게 해달라” 바이어 성화에 ‘삼성포럼’ 앞당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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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5强 향해 우리가 뛴다]<2>현지화 힘쓰는 IT-가전 산업

“내년에는 하루라도 더 빨리 가져다 팔 수 있게 ‘삼성 지역포럼’ 일정을 앞당겨 주세요.”

올해 초 삼성전자 주요 해외법인들에 쏟아진 현지 바이어들의 요청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2, 3월 대륙별 전략제품 발표행사인 ‘삼성 지역 포럼’을 열고 제품을 선보인다. 올해 모나코(구주포럼), 두바이(중동포럼), 인도(서남아포럼), 콜롬비아(중남미포럼), 중국(중국포럼), 남아프리카공화국(아프리카포럼) 등 6개국에서 열린 지역 포럼에는 각국에서 5000여 명의 바이어가 몰려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TV, 생활가전 제품 등을 계약했다.

삼성전자는 해외 바이어들의 요청을 감안해 내년에는 일정을 한두 달 앞당겨 1월 중 인도네시아와 멕시코, 스페인에서 지역 포럼을 열기로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가전전시회(CES)와 일정이 일부 겹쳐 빠듯하지만 해외 바이어들의 요구에 최대한 맞추기로 했다”며 “사업부별로 지난 1년 동안 개발한 신제품들을 각 지역 포럼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현지 생산, 현지 조달 시대

스마트폰과 TV, 생활가전 등은 우리나라의 효자 수출품목이다. 지난해 매출 가운데 삼성전자는 85.5%, LG전자는 81.0%를 해외에서 올렸다.

내년 수출 전망도 ‘맑음’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내년 스마트폰 등 무선통신기기 수출액은 전년 대비 5.7% 증가한 301억 달러(약 31조9000억 원), TV와 생활가전은 3.6% 증가한 156억 달러(약 16조5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내년에 해외 생산을 강화해 현지 특화형 제품 개발에 힘을 쏟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최적 지역 생산을 통해 수익률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10여 년간 이어져왔다”며 “과거 일본 기업들이 수출 거점을 국내에서 해외로 옮긴 것처럼 국내 기업들도 현지 생산 기반을 확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9월부터 중국 시안(西安)에 짓고 있는 차세대 낸드플래시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을 내년 상반기(1∼6월) 중에 가동한다. 이집트 남부 베니수에프 주에 1억 달러를 들여 지은 TV 및 모니터 생산공장도 최근 가동에 들어가 2017년까지 연간 200만 대씩 생산할 예정이다. 내년 초에는 베트남 타이응우옌에 짓고 있는 휴대전화 공장도 가동될 예정이다.

1962년 금성사 시절 미국에 라디오를 수출해 국내 기업 최초의 전자제품 수출 기록을 세웠던 LG전자는 현재 세계 31개 지역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현지에서 판매하는 제품 대부분을 현지 공장에서 조달하는 체계다.

지난해 3월 콜롬비아에서 열린 ‘삼성 중남미 포럼’에서 TV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모델들. 삼성전자 제공
지난해 3월 콜롬비아에서 열린 ‘삼성 중남미 포럼’에서 TV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모델들. 삼성전자 제공
○ 지역별 특화제품 공급

현지 생산의 가장 큰 강점은 지역별 수요를 반영한 특화 제품을 발 빠르게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덥고 습한 서남아 지역 생활환경에 맞춰 가정에서도 간편하게 얼음을 만들 수 있는 자동 얼음 제조기가 내장된 고급 양문형 냉장고를 선보였다.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붉은색 로고와 스탠드 디자인의 TV를 내놓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고질적인 전력 불안정에 대비해 내압 기능을 강화한 ‘서지세이프 TV’를 출시해 현지 시장 1위 브랜드로 도약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중남미 고객을 위해 축구 경기를 볼 때 화질과 음질을 최적으로 맞춰 마치 경기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축구 모드’ 기능이 있는 TV를 선보였다.

LG전자는 60도 이상의 고온에도 견딜 수 있는 ‘열대 컴프레서’를 장착한 에어컨을 6월 중동시장에 내놨다. 중국에는 현지에서 번영과 평안, 순조로움을 나타내는 선박 모양을 연상시키는 스탠드 디자인을 적용한 TV를 출시했다. 인도에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난과 국수 등 301개 현지 메뉴를 조리할 수 있는 광파 오븐을 선보였다. LG전자 관계자는 “인도는 남부, 북부, 서부 등 지역별로 음식문화가 달라 전 지역의 음식을 메뉴화해 제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인도에서는 가사 도우미를 두고 사는 부유층이 많은 점을 감안해 음식 도난을 막기 위한 잠금장치가 달린 냉장고를 내놓기도 했다.

동부대우전자도 옛 대우전자 시절의 명성을 앞세워 수출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동부대우전자는 특히 각 지역의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할 방침이다. 영국에서는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캠핑 트레일러용 전자레인지 시장을 공략해 진출 1년 만에 시장점유율 85%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는 최근 빠르게 늘고 있는 싱글족을 겨냥해 소형 ‘콤비냉장고’(냉장실이 위에 있고 냉동실이 아래에 있는 냉장고)를 전략제품으로 출시했다. 올해 목표는 전년 대비 50% 증가한 3만 대를 파는 것이다.
▼ 수출 혁신 비결은 ‘실시간 공급망관리’ ▼

삼성전자, 매장물류 실시간 체크… 재고 줄여
LG전자, 수요 예측해 전략생산… 원가 낮춰


국내 정보기술(IT) 및 전자 업체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미국 경쟁사들에 뒤졌다. 그랬던 국내 업체들이 일등 업체로 올라선 비결의 하나로 전문가들은 부품은 물론 제품의 생산 및 유통 관련 모든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급망관리(SCM) 시스템을 꼽는다. 이를 통해 해외 시장의 수요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면서 수출 물량도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1997년 모니터사업부에서 처음 SCM을 도입한 뒤 모든 사업부로 확산시켰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SCM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등 그룹 수뇌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 덕분에 2008년 삼성전자는 세계적 SCM 전문 연구기관인 AMR리서치가 선정한 ‘글로벌 SCM 톱 25’에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는 모든 해외법인의 운영 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을 넘어 각 시장의 수요 변화까지 감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 등 주요 국가 유통업체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온 덕에 매장별 수요, 공급까지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시스템을 갖췄다”며 “한눈에 세계 주요 시장의 물류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SCM 시스템이 삼성전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라고 말했다.

SCM이 잘 운영되면 재고를 줄일 수 있는 강점이 생긴다. 삼성전자의 경우 1998년 6.6회이던 재고 회전율이 2001년 10.3회, 2007년 14.3회로 늘었다. 재고 회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재고 없이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뜻이다. 일부 사업부는 불필요한 재고를 줄이기 위해 미리 제품을 만들어 놓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제품을 만드는 방식을 시험 운영하고 있다.

LG전자도 2000년대 초반 모니터사업부에서 SCM을 시범 적용한 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회사 전체 차원으로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2006년 글로벌SCM팀을 발족한 데 이어 2008년 초에는 HP 출신의 디디에 셰네보 씨를 최고공급망관리책임자(CSCO)로 영입해 시스템을 재정비했다. LG전자는 원가 절감을 목표로 일주일 단위 생산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부 사업부는 일일 단위 계획을 수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 관계자는 “내부 사업부별 수요 공급 정보뿐 아니라 주요 유통채널과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판매 및 재고 정보를 확보하는 등 수요 예측능력을 더욱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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