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기네 비판하면 ‘빨갱이 몰이’라는 정구사의 독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6일 03시 00분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정구사)이 어제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주장한 박창신 원로신부 등 전주교구 일부 사제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제단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비호한 박 신부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데 대해 “양심의 명령에 따른 사제들의 목소리를 빨갱이의 선동으로 몰고 가는 작태”라며 “신문과 방송의 악의적 부화뇌동도 한몫을 했다”고 주장했다. 자기네만이 옳고 이를 비판하면 ‘선동’이고 ‘악의적 작태’라는 억지는 도대체 어떤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남은 비판하면서 스스로는 어떤 비판도 받지 않겠다는 독선적인 태도다.

정구사는 천주교 내의 공식 조직이 아닐뿐더러 규모도 크지 않고 대부분 특정 정치 세력에 편향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단체다. 따라서 이들의 억지 변설에 큰 무게를 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정구사가 박 신부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 ‘빨갱이 몰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은 분명 그릇된 현실 인식이다. 이들은 마치 부당한 탄압이라도 받는 듯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성직자가 현실을 오도하는 발언을 하면 더 엄격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성직자가 교회 내부의 문제를 놓고 하는 말은 원칙적으로 세속 언론이 갑론을박(甲論乙駁)할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종교인이 세속의 어느 정파를 지지 또는 비판한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에 어긋난다. 하물며 연평도 도발처럼 군인과 시민이 무고하게 숨진 사건에서 북한의 행위를 정당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프란치스코 1세 교황은 올해 9월 강론에서 “훌륭한 가톨릭 신자는 정치 개입을 하지만 그것은 정치가들을 규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비록 사악한 정치인이라도 선한 통치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강론은 최근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이 “가톨릭 신자는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변화시키는 데 주저하지 말되 그 방법은 복음적 방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종교인이 때론 정치 현실에 불만이 있더라도 세속 정치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종교인이 목소리를 내야만 했던 독재 시대도 아니다. 종교가 나서지 않더라도 정치를 감시하는 단체들과 언론이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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