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훈]“선생님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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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한 고교생이 학교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했다. 그 학생은 혼자 끙끙 앓기만 했다. 집에서는 짜증이 늘어났다. 원인을 모르니 아빠는 답답했다. 자꾸 아이를 꾸짖게 됐다. 아빠와 아들은 갈수록 서로에게서 멀어져갔다.

우연히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아빠는 아들이 집단따돌림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빠는 상당히 괄괄한 성격이었나 보다. 며칠 후 야구방망이를 들고 학교에 찾아갔단다.

아빠는 아들을 괴롭힌 학생들을 경찰서에 넘겨야 한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일부러 방망이도 휘둘렀다. 교사들은 아빠를 제어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학교는 가해 학생의 처벌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제야 난동 수준의 항의가 끝이 났다.

며칠 전 친구가 기자에게 들려준 선배의 이야기다. 친구는 그 선배를 ‘열혈 아빠’라 불렀다. 앞뒤 가리는 것도 없고, 이것저것 재는 것도 없으며, 온몸으로 분노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흥미로운 것은 이 사건 이후 아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그 전에는 말도 잘 섞지 않던 아들이 부쩍 아빠를 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친구도, 선생님도 모두 모른 체했지만 아빠만큼은 비록 무식한 방법이기는 해도 확실히 자기편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번엔 한 병원의 홍보팀장 A 씨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A 씨에게는 어린이집에 맡겨야 할 어린 아들이 있다. 얼마 전 이사를 하는 바람에 어린이집을 옮겨야 했다.

환경이 달라졌으니 아이가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새 어린이집의 친구들이 꽤나 텃세를 부렸다. 심지어 친구들 몇 명이서 아이의 머리를 잡고 주먹질까지 했다. A 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A 씨는 어린이집을 찾아가 교사에게 아이가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 교사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A 씨는 교사의 답변을 믿을 수 없었다.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교사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고 한다.

어른들도 의견차로 인해 가끔 충돌한다. 그러니 아직 성숙하지 않은 어린애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게 최선의 해법이겠지만 쉽지 않다. 그렇다면 차선책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대처해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바로 교사다.

교육청에 근무하다 얼마 전 직장을 옮긴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집단따돌림이 발생할 때 교사들이 모를 것 같니? 아니야, 다 알고 있어. 다만 외부로 알려지면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 쉬쉬하는 거야. 그런 교사들이 스스로 개혁하지 않는 한 학교는 달라지지 않아.”

학부모라면 누구나 공감이 가는 얘기다.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 테니. 위의 두 사례에 등장한 교사들도 집단따돌림과 폭력 사건을 이미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그들은 부모가 따지기 전까진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모든 교사가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제자를 걱정하며 맘을 졸이는 교사들도 많다. 하지만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다며 몸을 사리는 교사들이 많은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기말고사 시즌이다. 수업시간에 퍼질러 자는 학생들과 그러거나 말거나 꼿꼿이 홀로 수업을 하는 교사들. 사제 간에 아무런 교감(交感)이 느껴지지 않는 교실.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참으로 서글픈 풍경이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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