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망각과 탈출의 도구다… 각박한 신자유주의 들숨-날숨 역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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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봉 뉴욕대 교수 4일 高大강연

지하철에는 스마트폰으로 게임과 채팅, 동영상 시청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최정봉 뉴욕대 교수는 이런 심심풀이용 스마트폰 사용을 각박한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셀프 러디즘(자기 태업)’이라고 분석한다. 동아일보DB
지하철에는 스마트폰으로 게임과 채팅, 동영상 시청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최정봉 뉴욕대 교수는 이런 심심풀이용 스마트폰 사용을 각박한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셀프 러디즘(자기 태업)’이라고 분석한다. 동아일보DB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기기는 최첨단 기술과 혁신의 집합체다. 그런데 이런 모바일 기기가 주로 채팅, 게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TV 시청처럼 심심함을 달래거나 머리를 비우는 일에 쓰이는 것은 아이러니다.

최정봉 미국 뉴욕대 영화학과 교수(사진)는 “지역과 국가를 막론하고 모바일 기기의 압도적인 용도는 놀이와 소일”이라며 “모바일 기기는 격화되는 경쟁과 생산성에 내몰린 신자유주의의 숨 막히는 일상의 들숨과 날숨”이라고 말한다. 영화와 미디어, 문화이론을 연구하는 최 교수는 4일 서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에서 ‘스마트폰과 신자유주의적 삶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강연한다.

미리 받아본 발표문에 따르면 과거의 몽상 혹은 ‘멍 때리기’는 모바일 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더욱 활성화된다고 최 교수는 주장했다. 모바일 기기가 신변잡기나 게임, 쇼핑, 채팅 같은 ‘저편’으로 이동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그 탈주 행위에 인터넷이나 e메일, SNS가 운송수단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모바일 기기는 사용자가 원치 않는 시공간에 갇혀 있거나 강제된 업무를 할 때 활용하는 반(反)집중의 도구이자 퇴각의 기기이며 자신이 원하는 ‘저편’으로 신속하게 이동시키는 촉매”라고 밝혔다.

그의 주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과 높은 노동·학습 강도를 지닌 한국에 시사점을 준다. 최 교수는 “모바일 기기는 망각의 도구,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학업과 노동으로부터의 피난처 기능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모바일 기기는 쉬는 시간뿐 아니라 점차 근무시간, 수업시간, 수면시간의 일부까지 침식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이 ‘하찮음’에 몸과 마음, 시간을 주는 행위는 과도하게 사용되는 육체와 집중력에 대한 ‘셀프 러디즘(self-luddism)’”이라고 규정했다. 기계파괴운동을 뜻하는 러디즘을 자신에게 적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런 행위는 학업과 생산에 쓰일 수 있는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말하자면 자기 육체라는 생산수단에 대한 선제적 반달리즘(파괴행위)”이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해 논란을 일으킨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게임중독법)에 대해선 “일부 모바일기기 사용자의 중독을 운운하며 법적 공적 개입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더 큰 불행의 실체를 이루는 현재의 학교와 비효율적 경쟁구도의 개선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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