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홍수용]종이호랑이가 두려운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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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경제부 기자
홍수용 경제부 기자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1일 발간한 최신호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를 ‘테이퍼 타이거(taper tiger)’라고 불렀다. 종이호랑이를 뜻하는 페이퍼 타이거(paper tiger)의 앞 단어를 테이퍼(양적완화 축소)로 바꿔 만든 말. 연준이 자산 매입 규모를 줄이는 양적완화 축소 조치에 들어갈 것처럼 분위기를 띄워 놓고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그동안 종이호랑이처럼 괜히 겁만 줬던 것 아니냐’고 비꼰 것이다.

양적완화는 초저금리 상태에서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해 시장에 돈을 푸는 정책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 연준은 3차례에 걸쳐 양적완화를 실시했다. 이 정책에 따라 8월 말까지 풀린 돈은 3조7370억 달러(약 4000조 원)에 이른다. 현재 매달 850억 달러를 풀고 있는데, 이 규모를 650억∼750억 달러 정도로 줄이는 것이 양적완화 축소의 뼈대다.

기획재정부의 수장인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9일 충남 공주 산성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국이 경제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이 있다는 걸 느꼈다”며 “이는 양적완화 축소가 가까워졌다는 뜻”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양적완화 축소의 파장을 우려하며 선제적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공식 발언과 달리 현 부총리는 이미 연준이 양적완화 축소 조치를 연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11일 현 부총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벤 버냉키 의장의 임기가 내년 1월까지인데 ‘그만두는 사람’ 입장에서 큰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할 경제정책 책임자가 파장을 예측하기 힘든 정책에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면서 현 부총리는 “꼭 9월이 아니더라도 양적완화 축소는 ‘기분 나쁘게’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다”고 전망했다.

양적완화 축소와 관련한 연준의 정책이 종이호랑이였던 것으로 드러나자 국제 금융계는 일단 환영했다. 하지만 양적완화와 관련한 미국의 정책은 어떻게 튈지 모른다. 연준 의장은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지만 정치에 민감하다. 정치적 변수로 정책의 추진 시기와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자금줄을 죄는 정책이 갑자기 본격화하면 종이호랑이에 안도하던 사람들은 다시 걱정에 휩싸일 것이다.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걱정은 공포가 될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한국 경제의 체질이 건실하다”는 신용평가사의 평가에 취해 있다가는 ‘뒤통수’를 맞게 될 소지가 있다. 정부는 흔히 선물환 포지션 한도 규제 같은 ‘거시 건전화 3종 세트’면 대부분의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을 가정해 테스트해볼 필요가 있다.

종이호랑이를 본 사람은 방심하다가 진짜 호랑이에게 더 크게 당한다. 종이호랑이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수용 경제부 기자 legman@donga.com
#테이퍼 타이거#미국 연방준비제도#자산 매입 규모#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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