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술과 민폐로 얼룩덜룩 ‘색가루 마라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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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면 어때요… 샤워는 각자 알아서… 참가비 환불? 물론 안되죠

14일 경기 고양시 대화역에서 오금역 방향으로 향하는 지하철 내부에 이날 색가루를 뿌리며 달리는 이색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이 가루가 묻은 옷을 입은 채 앉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승객은 적지 않은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고양=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14일 경기 고양시 대화역에서 오금역 방향으로 향하는 지하철 내부에 이날 색가루를 뿌리며 달리는 이색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이 가루가 묻은 옷을 입은 채 앉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승객은 적지 않은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고양=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5, 4, 3, 2, 1… 와∼(함성).”

출발선의 문이 열리자 흰 티셔츠를 입은 참가자들이 달려 나갔다. 노랑, 파랑, 초록색 가루를 안고 있던 진행요원들이 참가자들을 향해 뿌렸다. 얼굴과 티셔츠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참가자들이 인증사진을 찍으며 앞으로 향했다.

14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3회 컬러 미 라드(Color Me Rad)’. 2012년 미국에서 시작한 이색 마라톤으로 참가자들이 색가루를 뿌리며 5km 코스를 뛰는 행사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곳은 ‘컬러 미 라드 코리아 5K’. 7월 20일 서울 잠실, 이달 7일 인천 문학경기장에 이어 14일 일산 행사가 국내 세 번째였다.

그러나 이날 행사는 주최 측의 무성의한 준비로 인해 주변 시민들에게 적잖은 불편을 끼쳤다. 킨텍스 주변에 세워져 있던 차량들은 ‘색가루 테러’를 당했다. 참가자들이 사방으로 가루를 뿌리자 주차된 차들의 문틈으로 색가루가 날아 들어간 것. 현장에 있던 진행요원들은 이를 보고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행사장 인근 도로는 초록색, 노란색 가루로 물들었다.

대회 장소를 대관한 킨텍스 측은 1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도로 블록 사이에 낀 가루들을 청소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주최 측은 피해를 본 차량의 주인이 연락해 올 경우 세차비를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최 측은 얼굴과 옷에 색가루를 뒤집어쓴 참가자들을 위한 샤워시설도 마련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킨텍스 내부 화장실이나 인근 대화역 화장실에서 가루를 털어내야 했다. 이 때문에 다른 목적으로 킨텍스를 찾은 사람들과 인근 지하철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지하철 이용객 박모 씨(28·여)는 “사람들이 세면기를 둘러싼 채 씻고 있어 화장실을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성추행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샤워시설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행사가 끝난 뒤 지하철 3호선 대화에서 오금 방면으로 가는 전동차 안에는 옷에 색가루를 묻힌 채 앉아있는 참가자들이 여럿 보였다. 이들이 움직일 때마다 떨어져 나오는 색가루가 전동차 시트에 묻었고 일부 승객들과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행사 전날 비가 쏟아졌고 대회 당일 오전까지 지역에 따라 비가 100mm 이상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따라 일부 참가 예정자들은 “빗속에서 달리는 건 사고의 위험이 있다. 날짜를 조정하거나 환불해 달라”고 주최 측에 요청했다. 하지만 주최 측은 요지부동이었다. 회사원 임모 씨(28·여)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행사를 연기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주최 측에 여러 번 전화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며 “결국 참가를 포기했는데 환불을 해주지 않아 참가비 4만 원만 날렸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다행히 비가 잦아들면서 마라톤 행사는 진행됐지만 피해를 본 참가자나 시민에 대해 주최 측은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

한 참가자는 “색가루를 뿌리는 이색 마라톤은 발상은 좋았다. 하지만 주최 측은 비싼 참가비를 받는 데만 신경을 썼지 참가자를 배려하는 데는 인색했다”고 지적했다. 컬러 미 라드 관계자는 “외국의 행사를 그대로 도입하다 보니 셔틀버스와 샤워시설 등 준비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 문제점은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컬러 미 라드#색가루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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