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곳간 채울 대책없이 지출만 늘려… 재정건전성 위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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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국가총수입 5조 감소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국가의 수입이 전년보다 줄어드는데도 지출을 늘리기로 한 것은 서민과 중소기업이 경기 침체로 받을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경기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는 만큼 재정이 복지 증진과 성장잠재력 확충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나라 곳간을 채울 수 있는 뚜렷한 대책이 없는데 복지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하면 재정건전성이 더욱 악화되고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경기 부진에 법인세 수입 ‘빨간불’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총수입 부분에서 가장 우려한 대목은 국가 총수입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부가가치세와 법인세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1∼7월 부가세 수입은 41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조 원 정도 줄었다. 올해 7월까지 걷은 법인세는 작년 동기보다 4조 원 이상 감소한 22조 원에 그쳤다.

문제는 내년에도 부가세와 법인세 수입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출구전략 추진으로 전 세계적 경기 위축이 이어지고 한국의 주요 수출 상대국인 신흥국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 국내 소비와 수출도 줄어 부가세와 법인세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2013년 예산안을 짜면서 이 같은 세목별 세수를 정밀하게 전망하지 못해 현재와 같은 세수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2014년 예산안을 편성할 때는 세목별 특성을 감안해 양도소득세처럼 경기를 크게 타지 않는 세목과 법인세와 소득세처럼 ‘경기민감 세목’의 세수 전망을 별도로 했다. 그 결과 내년 총수입이 올해 본예산안보다 5조 원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치가 나온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내년에 부동산 대책과 투자활성화 대책의 효과가 나타나면 세수 상황이 다소 나아지겠지만 여전히 글로벌 경기를 낙관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총수입 전망을 보수적으로 산정했다”고 말했다.

현재 기획재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부담금의 비율(국민부담률)이 2012년 기준 2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33.8%)보다 낮아서 세금과 각종 사회보험료 등을 더 걷을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 반발을 우려해 비과세 감면 규모를 점차 줄이고 세무조사를 통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방법으로 세수를 늘리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기재부 당국자는 “고령화와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중장기 조세정책을 개편해 세금을 늘릴 필요가 있지만 당장은 직접적 증세가 아닌 간접적 수단을 통해 재정 수입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 ‘쪽지예산’에 불안한 정부

정부는 내년 100조 원이 넘는 복지예산안을 편성하면서도 성장과 일자리 분야에 재정의 상당 부분을 투입하기로 했다. 우선 소상공인에 대한 저리 대출자금 규모를 2013년 7500억 원에서 2014년 9150억 원으로 증액한다. 또 중소기업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 전시회 지원과 법률 컨설팅 등에 드는 예산 규모를 올해 800억 원 정도에서 내년에 1000억 원으로 늘리고 전통시장 육성 차원에서 온누리상품권 발행 규모도 확대할 예정이다.

이런 예산은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 등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고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정작 정부가 고민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수시로 요구하는 SOC 예산 관련 민원이다. 예산안 확정 단계에서 봇물처럼 쏟아지는 이른바 민원성 ‘쪽지예산’에 예산안이 누더기가 될 수 있어서다.

2014년 총지출(356조 원)은 올해보다 13조 원 늘어난 수준이다. 최근 5년간 평균 총지출 증가액인 17조 원보다 적다. 민원성 예산으로 재원을 여기저기에 떼어주기가 여느 해보다 더 힘든 셈이다. 일례로 정부는 지역공약 신규 사업 가운데 내년에 착공하는 사업이 별로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 내용이 구체화돼 있지 않거나 예비타당성 조사 등 착공 전 거쳐야 할 단계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기재부는 지역사업을 포함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관련해 “올해 예산안에서 재정이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면 내년 예산안에서는 민간투자에 성장의 상당 부분을 맡길 계획”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민간에서 SOC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되 민간 사업자가 은행에서 빌린 돈의 이자를 정부가 지원해 주는 형태로 재정 투입액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국회의원이 지역구 민심을 의식해 설익은 지역사업을 예산안에 반영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향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부)는 “현재 정부는 재정건전성 확보와 지출을 통한 성장과 복지 증대라는 두 가지 갈림길에 서 있다”며 “국민 동의를 거쳐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홍수용 기자·박재명 기자 legman@donga.com
#국가총수입#경기 부진#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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