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 사퇴]“물러나라” 黃법무 권유 안통하자 민정수석실까지 압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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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동욱 전격 사퇴 왜?

13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전격 사퇴를 결정한 것은 ‘검찰 조직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선택이라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그는 전날까지 조선일보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와 유전자 검사 방침을 밝히면서 진실 규명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사상 초유의 ‘감찰’을 발표하자 ‘나가라’는 정권의 메시지가 분명해졌다고 보고 “정권과 계속 맞서면 검찰 조직까지 다친다”는 판단에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 채동욱 “조직까지 다치면 안 된다” 사퇴 결심

채 총장은 사퇴 전에 이미 여러 경로로 비공식적인 사퇴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혼외 아들 의혹’이 보도된 다음 날인 7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극비리에 채 총장을 만나 “사퇴하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정권 핵심부에서 의혹의 진위와 무관하게 고위 공직자로서 처신이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뜻이 전해진 것. 채 총장으로선 황 장관을 통해 “인사권자의 신임을 받지 못하는 ‘식물 총장’이 됐다”는 경고를 받은 셈이다. 법무부도 대검 측에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요청하라”는 뜻을 두 차례 전달했지만 대검에선 “채 총장 스스로 의혹의 진위를 밝히기 전엔 그럴 수 없다”며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주 들어서도 채 총장은 법무부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로부터 집요한 사퇴 종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황 장관이 채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를 고려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 같다”는 뜻을 다시 한 번 완곡하게 전했다고 한다. 채 총장은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 과정이 진행 중이어서 반드시 진상을 밝힌 뒤에야 거취를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며 사실상 사퇴 권고를 거부했다고 한다. 국민수 법무부 차관도 채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간곡하게 설득했지만 채 총장은 이 역시도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자 민정수석비서관실이 직접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이번 주 후반 채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를 하지 않을 거면 청와대 공직기강 감찰반의 감찰이라도 받으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채 총장은 “감찰을 받으라는 건 사퇴하라는 뜻이나 다름없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채 총장은 이처럼 여러 차례 사퇴 압박을 받은 상황에서 황 장관까지 적극 나서자 “더는 버티는 게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검찰 총수인 자신이 개인적인 의혹으로 감찰을 받게 되면 감찰이 진행되는 동안 사정의 중추인 검찰 조직을 지휘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감찰’ 같은 극한 카드를 꺼낼 정도라면 자신이 정권에 대항해 버텨도 소용없을 뿐 아니라 검찰 조직에도 타격이 간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감찰이라는 수모를 견뎌낸다고 해도 혼외 아들 의혹이 유전자 검사를 거쳐 최종 판가름 나려면 수개월 이상 걸릴 텐데, 그 사이 검찰 조직은 총장 리더십의 부재 상태에서 상처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 갑작스러운 법무부의 총장 감찰 지시

황 장관의 채 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는 13일 오후 1시 40분경 발표됐다. 하지만 이날 오전까지 법무부 관계자 대부분은 채 총장에 대한 감찰 결정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감찰관도 해외 출장 중이었다.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던 대검 관계자들도 ‘청사에서 대기하라’는 법무부의 지시에 따라 서둘러 복귀할 정도로 감찰 발표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황 장관은 채 총장이 사퇴한 후인 13일 오후 퇴근시간 직전 일선 검사들에게 e메일을 보내 “오늘 검찰총장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불행스러운 사태가 있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흔들리지 말고 각자의 위치에서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감찰을 지시한 배경과 관련해 “지난주 언론 보도 이후 검찰총장 본인의 강력한 부인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에 대한 논란이 지속됐다”며 “장관으로서 감찰관으로 하여금 사안의 진상을 신속하게 파악하도록 조치했으며 이는 하루빨리 의혹을 해소해 검찰이 본연의 업무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감찰이 진행되는 동안 사안에 따라 사표를 제출해도 수리하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채 총장은 강력한 사의를 표명한 만큼 조만간 수리될 것으로 본다”며 “채 총장이 공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감찰은 진행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미 청와대가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기 전부터 채 총장 사퇴 수순을 밟고 있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대통령민정수석실 관계자가 “채 총장은 곧 사퇴한다”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고 현직 검찰 간부 몇몇은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직접 전해 들었다고 한다.

12일 채 총장이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방침을 공식화하고 유전자 검사를 받겠다는 뜻도 밝히면서 하루를 더 벌었지만 이미 굳어진 청와대의 뜻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한편 채 총장 사퇴 이후 법조계에선 황 장관 역시 이번 사태로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는 점에서 황 장관도 모종의 결심을 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채 총장은 사퇴 성명을 통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결과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은 수사팀의 의견을 존중한 사심 없는 판단이었다’는 메시지와 ‘혼외 아들 의혹은 댓글 수사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검찰 흔들기다’라는 두 가지 뜻을 던졌다.

채 총장 사퇴에 따른 부담은 정권이 지게 될 거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의혹 때문에 현직 총장을 사퇴시켰다는 인식이 번져 나가면 이 정권도 역대 정권과 마찬가지로 ‘검찰 순치’를 하려 한다는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권 후반기에 들어가면 결국 청와대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성·강경석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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