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 압박 수사에 밀려 추징금 내는 全 씨 일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6일 03시 00분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집과 사무실 17곳을 동시에 압수 수색하며 미납 추징금 환수에 나선 지 어제로 딱 50일이다. 최근 전 씨 일가는 백기투항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쉽게 항복할 것을 지난 16년간 무슨 오기로 버텼는지 의아하다. 그동안 법치가 얼마나 공허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최근 태도 변화는 전 씨의 아들들이 구속될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차남 재용 씨는 3일 검찰에 불려가 18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그는 부인과 장모, 처제 등을 통해 미국에 수십억 원대 부동산을 차명으로 매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의 낡은 건물들을 사서 재개발을 추진하며 세입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아버지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재산으로 ‘전두환 타운’을 조성하려 한 것이다. 처남 이창석 씨가 구속됐고 장남 재국 씨의 소환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줄줄이 쇠고랑을 차게 될 것이 확실해지자 마지못해 추징금 납부 의사를 밝혔다.

채널A 보도에 따르면 전 씨 일가는 서로 분담할 구체적 액수도 논의한 모양이다. 재국 씨가 700억 원, 재용 씨가 500억 원, 삼남 재만 씨가 200억 원, 딸 효선 씨가 40억 원가량을 부담할 계획이라고 한다. 재만 씨의 장인인 이희상 동아원 회장도 100억 원 상당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이순자 씨 명의로 돼 있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본채와 셋째 며느리 소유인 별채 등 연희동 사저도 국가에 헌납할 것이란 말이 나온다.

이 정도면 전 씨가 미납한 추징금 액수인 1672억여 원에 얼추 가깝다. 하지만 재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이어서 막대한 양도소득세를 물어야 하는 데다 매매나 경매가 제대로 이뤄질지도 알 수 없다. 검찰로서는 자진 납부 약속만 믿고 섣불리 수사를 중단할 수 없을 것이다. 추징금을 다 낸다 해도 조세 포탈이나 재산 국외도피 같은 범죄 행위는 그냥 덮을 수 없다.

전 씨 일가는 국민에게 속죄할 기회가 많았으나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떼를 지어 호화 골프를 치러 다니면서 “29만 원밖에 없다”며 국민의 감정을 자극했다. 늦은 감이 있으나 이제라도 추징금을 깨끗이 털어내고 참회의 길을 걸어야 후손들이 얼굴을 들고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노태우 전 대통령도 동생과 전 사돈을 통해 미납 추징금 230억여 원을 완납했다. 전 씨에 비해 잔여 추징금이 적어 부담이 덜했을지 모른다. 두 전직 대통령들은 추징금을 다 냈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는지 국민은 계속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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