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車노조는 상생페달 밟는데 한국만 파업 역주행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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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산업의 미래’ 노조경쟁력 살펴보니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현대자동차가 요즘 겪고 있는 노사 문제를 50, 60년 전에 겪었다. 당시 노조도 무조건 더 달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파산한) 디트로이트 시다. 한국은 이제 임금 수준이 높아졌다. 많이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생존이다.”

전미자동차노조(UAW) 출신 마이클 무어 미시간주립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한국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과거 미국 자동차 노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이 UAW 노조원으로 있을 때와 최근 한국 자동차 노조의 모습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일상화한 파업으로 자동차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최근 새로운 노사 관계를 토대로 경쟁력 제고에 주력하고 있다. 강성 노조로 악명 높은 프랑스 자동차 업체조차 노조가 사측의 구조조정 계획에 합의하는 등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메카’ 디트로이트 시의 파산을 목격한 UAW 또한 고통을 분담하며 빠르게 경쟁력을 회복해 나가고 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는 세계 주요 자동차 기업 노조의 경쟁력 제고 동참 노력을 점검했다.

▶본보 8월 29일자 B8면 참조 [DBR]‘잿빛 도시’ vs ‘햇볕 도시’

○ 노조가 스스로 임금 동결

2011년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 도요타자동차는 위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2010년 미국에서의 대량 리콜 사태, 동일본 대지진 등 악재가 이어졌다. 생산에 막대한 차질을 빚은 도요타는 2011년 결국 GM과 폴크스바겐에 추월당하며 세계 3위로 추락했다. 하지만 도요타는 지난해 세계 1위로 복귀했다. 안정된 노사 관계가 한몫했다. 도요타는 올해까지 4년 연속 노조가 자진해서 기본급 동결을 사측에 먼저 제안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판매 하락, 리콜, 지진, 홍수, 생산 차질 등 많은 어려움을 겪는 동안 눈앞의 이익보다는 생존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 달라진 프랑스 노조

“프랑스 노동자들은 임금은 많이 받아 챙기면서 하루 3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쉬느라 1시간, 밥 먹느라 1시간, 수다 떠느라 3시간을 보낸 뒤 3시간 일한다.”

올해 2월 미국 타이어 업체 ‘타이탄 인터내셔널’의 최고경영자(CEO)가 프랑스 강성 노조를 꼬집은 말이다. 모리스 테일러 사장은 경영난에 처한 프랑스 타이어 업체 굿이어의 공장 인수를 위해 해고 계획을 밝히고 노동 시간을 늘려 보자고 제안했다가 노조의 강한 반대에 부닥쳤다. 결국 테일러 사장은 인수 계획을 철회했고 굿이어는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프랑스 산업장관은 인수를 재고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테일러 사장은 차갑게 돌아섰다.

프랑스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4위의 자동차 대국이었지만 지금은 10위권으로 추락했다. 유럽 재정위기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직된 노동운동과 고임금-저생산의 비효율적인 생산시스템에서 비롯된 경쟁력 저하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 노조도 생존을 위해 변화하고 있다. 르노자동차 노조는 올해 임금 동결과 향후 임금 인상 억제, 노동시간 연장, 인력 감축안 등 회사 구조조정 방안을 지지하고 나섰다. 일부 강성 노조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푸조-시트로엥은 6000명 감원, 파리 인근 오네수부아 공장 폐쇄 등을 통해 총 8억 유로(약 1조160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한다는 계획을 대다수 노조원이 수용했다. 강성 노조의 기세에 밀려 구조조정에 나서지 못했던 다른 유럽 자동차 업체들도 노동 유연성 제고에 노조가 합의하는 등 노사관계의 틀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 앞서 나가는 독일

일찌감치 유연한 근무제를 도입한 독일 자동차 업체들은 경기 침체 속에 나 홀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이는 독일 정부가 2000년대 초반 ‘하르츠 입법’을 통해 한발 앞서 노동 개혁을 이끌어낸 덕분이다. 하르츠법은 노동시장 규제 완화, 해고 보호 완화, 신규 채용 시 수습기간 연장 등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한 법이다. BMW는 생산량이 많지 않은 시기에 상당수 노동자가 장기 휴가를 갈 수 있는 탄력근무제와 상황에 맞춰 인근 공장에 직원을 파견하는 교환근무제 등을 20여 년 전부터 도입했다. 한쪽 공장에선 재고가 쌓이고 다른 쪽에선 주문이 밀려도 함부로 노조원을 파견할 수 없는 한국 자동차 기업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제도다. BMW 측은 “유연한 근무제를 도입한 이후 공장 생산성이 30% 넘게 향상됐고 국내 생산 증가율도 세계 최고 수준인 49%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 한국의 노조만 ‘역주행’

프랑스 못지않게 강성으로 분류되던 UAW도 노동유연성 제고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GM과 크라이슬러가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숨을 돌린 직후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구조조정에 나서려 하자 UAW는 고임금 근로자 명예퇴직 실시, 성과급 중심 임금 체계 확대, 퇴직자 및 부양가족 의료비 부담 완화, 주야 2교대제의 3교대제 전환 등 노동 유연성을 대폭 끌어올리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한국 자동차 노조는 예외다. 현대·기아자동차 노조는 한국 내 자동차 생산량이 2년 연속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올해 또다시 더 많은 요구를 하며 작업을 거부하곤 했다. 강성 노조로 인해 현대차 국내 공장의 생산성은 해외 공장에 비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는 국내 공장의 생산현장이 경직돼 있어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현대차 국내 공장의 대당 투입시간(HPV)은 해외 공장의 두 배 수준이다. HPV는 차 한 대를 생산하기 위해 투입되는 총 시간을 뜻하며 수치가 낮을수록 생산성이 우수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독일은 미리 대비한 측면이 있는 반면에 미국과 프랑스는 생존의 위협을 느낀 뒤 노조가 변하기 시작했다”며 “한국 자동차 노조도 바닥을 치기 전에 변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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