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윤상호]차세대전투기(FX) 사업 유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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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스텔스 전투기는 미래 전쟁의 판도를 가를 ‘창(槍)’으로 불린다. 적의 레이더에 들키지 않고 적국 영공 깊숙이 침투해 일격을 날릴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레이더파를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특수재질로 제작된 미국 공군의 F-22(랩터·Raptor) 스텔스기는 레이더 화면에 작은 새나 벌레 크기로 나타난다. F-22가 현존 최강 전투기로 평가받는 주된 이유도 이런 스텔스 능력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앞다퉈 스텔스기를 도입하거나 개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차세대전투기로 F-35A 스텔스기를 선정한 일본 정부는 한술 더 떠 내년부터 스텔스기를 잡을 수 있는 레이더를 개발한다고 일본 NHK가 최근 보도했다. 스텔스 능력 면에서 ‘창과 방패’를 모두 갖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일본의 ‘스텔스 야심’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2007년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워싱턴 방문을 앞두고 일본 정부가 F-22 100대 도입을 추진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간 뒤 백악관이 이를 확인하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한국과 중국에선 일본이 그 정도의 F-22를 갖게 되면 동북아 군사균형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2014년 첫 시험비행을 목표로 신신(心神)으로 이름 붙인 스텔스기를 독자적으로 개발 중이다.

스텔스기가 ‘금과옥조(金科玉條)’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전쟁 초기엔 은밀하게 적의 핵심 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스텔스 성능이 요긴하지만 이후 다양한 임무를 위해선 무장과 기동성, 근접전투능력 등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스텔스기의 탐지추적 기술도 개발 중인 만큼 스텔스 성능은 차세대전투기가 갖춰야 할 여러 요건의 하나일 뿐 ‘요술방망이’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이르면 수년 안에 동북아 상공엔 스텔스 전투기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F-35A 도입에 맞서 중국은 J-20, J-31 두 종류의 스텔스기를 개발해 시험비행까지 끝냈다. 러시아도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T-50(PAK-FA)을 2016년부터 실전배치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은 조만간 기종 결정을 앞둔 한국의 차세대전투기(FX) 사업에 풀기 힘든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8조3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첨단 전투기 60대를 구매하는 이 사업은 이달 중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주관하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F-15SE(미국 보잉)의 채택 여부로 판가름 난다. 3개 후보 기종 가운데 F-15SE를 제외한 F-35A(미국 록히드마틴)와 유로파이터(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EADS)는 총사업비를 초과해 성능과 기술이전 등 종합평가에서 F-15SE를 따돌려도 관련 규정상 계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전략무기인 FX 기종이 성능보다 ‘최저가’로 결정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방위사업청은 난감한 표정이다. 현지 성능평가 등에서 3개 기종 모두 FX의 요구 성능을 충족한 만큼 ‘가장 저렴한 기종’을 고르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방위사업청은 반박한다. 일각의 주장대로 지금 와서 사업을 원점 재검토하면 몇 년 안으로 공군 전력의 큰 공백이 초래돼 다른 대안이 없다는 논리도 편다.

하지만 1970년대 개발된 4세대 기체를 개조한 F-15SE는 주변국의 5세대 스텔스기 전력에 대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도입 후 30∼40년간 북한과 주변국의 안보 위협을 억제할 스텔스 기능을 가진 최첨단 전투기 도입이라는 당초 사업 취지가 퇴색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FX사업의 딜레마는 돈이 아닌 전략의 부재(不在)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국가생존과 직결되는 전략무기의 안보적 가치를 간과한 채 예산만 따지다 보니 FX사업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될 처지에 놓였다는 얘기다.

비단 FX사업뿐만이 아니다. ‘주판알만 튀겨선’ 앞으로 대한민국에 닥칠 안보적 위협과 도전을 헤쳐 갈 묘수를 찾을 수 없다. 북한의 핵위협과 역내 패권을 노리는 중국,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의 군비 증강에 어떻게 대처하고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할 것인지 냉철한 판단과 안보전략 수립이 먼저라고 본다. 돈은 그 다음 문제다. 예산타령만 해선 안보 백년대계(百年大計)는 요원하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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