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염희진]일본 맥주의 부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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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 소비자경제부 기자
염희진 소비자경제부 기자
올 6월 일본 기린맥주의 이소자키 요시노리 사장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매장에서 만났다. 당시 적잖은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기린은 카페를 통째로 빌려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백주대낮에 줄이 옆 가게까지 이어져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손님이 20, 30대 여성이었다. 젊은 여성끼리 모여 낮술을 마시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 않은가.

일본 맥주 시장에서 기린은 아사히에 이어 점유율 2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사히, 산토리, 삿포로 등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편이었다. 2011년 한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유통채널이 일부 대형마트에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 진출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후발 주자로서 기린이 택한 방법은 분명한 타깃 설정이었다. 요시노리 사장은 “처음부터 젊은 여성 고객을 집중적으로 겨냥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 시도된 적 없는 주류 팝업스토어를 1년간 기획했다. 젊은 여성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새로운 경험에 대한 입소문을 퍼뜨리게 하자는 의도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한 달간 3만여 명이 기린 팝업스토어에 다녀갔다. 기린은 서울 팝업스토어의 영업을 연장한 데 이어 부산 해운대에 추가 점포를 열었다. 그리고 한국주류협회가 집계하는 수입맥주 시장점유율 순위에서 3계단 위인 5위로 뛰어올랐다. 최근엔 경쟁사인 아사히도 서울 강남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올해 주류 시장의 특징은 기린을 비롯한 일본산 수입맥주의 돌풍으로 요약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일본 맥주는 상반기(1∼6월) 수입맥주 시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방사능 오염이나 양국 관계 악화도 일본 맥주 판매량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런 국내 소비자 반응에 고무된 일본 맥주업체들은 이자카야(일본식 주점) 등 외식업체들로 판매 영역을 넓히고 있다. 기존의 병맥주·캔맥주 이외에 생맥주까지 팔아 보겠다는 의도다.

예전의 국내 맥주 시장은 그다지 까다롭지 않았다. 손님들은 브랜드나 맛을 따지지 않았고, 술집 종업원이 가져다주는 대로 맥주를 마셨다. ‘맥주회사 영업사원은 아줌마(종업원)의 핸드크림부터 챙겨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독주를 피하고 부담 없는 술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은 맥주의 브랜드와 맛을 따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는 한국 맥주’가 논란이 됐다. 여기서 한국 맥주의 구체적인 맛을 놓고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맛은 주관적인 기준일뿐더러 “식문화에 맞추다 보니 한국 맥주의 맛이 밋밋해졌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다만 국산 맥주의 맛이 다양하지 못했던 점은 따끔하게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과점(寡占) 구조에 취해 달라진 소비자의 취향과 음주 문화를 읽지 못한 국내 주류업체의 안이함에 있다는 생각이다. 그 사이 일본 맥주는 빠르고 치밀하게 한국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염희진 소비자경제부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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