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 근로자 채용한 기업들의 하소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관리-복지비 추가부담 늘어나 ‘시름’
전일제-시간제 근로자 갈등에 ‘시끌’

“아이고 속이야.”

지난달 말, 식품제조업체 A사에 다니는 김 반장은 출근길부터 쓰린 속을 부여잡았다. 전날 밤 같은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회식하며 과음해서다. 점심시간 김 반장은 숙취 해소 음료 2병을 샀다. 한 병은 어제 입은 ‘내상’을 달래기 위해, 다른 한 병은 저녁에 있을 ‘시간제 정규직팀’과의 회식에 대비하는 용도였다. 김 반장은 “회사에서 시간제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들이 서로 말도 섞지 않다 보니 화합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회식을 두 번 하게 된다”고 말했다.

회사 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A사는 작년 중반께 시간제 근로자 30여 명을 채용했다. 이후 종일 근로자와 시간제 근로자 사이에 생각지도 못했던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갈등의 씨앗은 ‘청소’였다. 전일제 직원들은 오후 6시까지 일하고 공장 바닥과 생산 라인을 모두 정리한 뒤에야 퇴근한다. 이 때문에 오후 2시만 되면 회사 문을 나서는 시간제 정규직들이 영 마뜩잖았던 것이다.

시간제 직원이라고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무늬만 정규직일 뿐 회사와 전일제 근로자로부터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시간제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는 같은 작업장에서조차 말을 섞지 않는 데면데면한 관계가 됐다.

○ 고용 늘리려다 생긴 ‘시간제 왕따’

정부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늘리기에 나섰지만 현장에서는 수만 늘릴 게 아니라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어려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직장 내 차별을 없애야 실질적으로 시간제 일자리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시간제 근로자를 채용하고 있는 13개 업체를 대상으로 애로 사항과 정부에 바라는 점을 들어 보니 대부분의 업체가 기업의 비용 부담과 직장 내 ‘집단 따돌림(왕따) 현상’을 대표적인 문제로 꼽았다.

제조업체인 B사는 시간제 일자리 직원을 뽑은 뒤 인건비 부담이 늘어서 고민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20명의 시간제 정규직을 채용한 뒤 이들을 관리 감독할 인력을 배치하지 못한 점을 뒤늦게 깨달았다. 부랴부랴 공장 안전 관리를 할 사람과 인사 행정을 볼 사람 등 6명을 관리직으로 충원했다. 이들 관리직을 뽑기 위해 100명이 넘는 인원의 서류를 받고 면접을 진행하는 과정에 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C사는 최근 당초 목표했던 연간 순이익 성장률을 재조정했다. 새로 늘어난 인력에 맞춰 부대시설을 늘리고 복지비용을 늘리다 보니 지출이 예상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올해 30명의 시간제 정규직을 채용하며 화장실 1곳과 휴게실 1곳을 새로 지었다. 화장실 신축에 든 비용만 1000만 원. 통근버스도 2대에서 4대로 늘리고 식비와 간식비, 복지비용 명목으로 나가는 각종 경조사비도 모두 늘었다.

○ 제도 정착까지는 ‘먼 길’


2012년 기준 전국 149만 개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시간당 임금은 평균 9476원으로 전체 근로자 평균 임금(시간당 1만3145원)의 72% 수준이다. 시간제 일자리 평균 임금은 2008년만 해도 전체 근로자의 60%에 못 미쳤지만 2010년 63%에 이른 뒤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일단 시간제 근로가 임금 면에서는 전체 평균치에 근접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시간제 정규직 제도의 성패를 쥐고 있는 ‘전일제 정규직 근로자와 같은 수준의 복지혜택’은 여전히 기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시간제 근로자의 고용보험과 건강보험 가입률은 2012년 기준 30%대에 머물고 있다. 전체 근로자가 고용보험 등에 가입한 비율이 90%에 이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철수 서울대 법학부 교수는 “정부가 고용보험기금을 활용해 시간제 정규직 고용업체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비용 부담을 덜어 주는 한편 시간제 정규직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송충현·홍수용 기자 balg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