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분석 1%만 틀려도 수십억원 날아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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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에너지 울산공장 원유분석실 긴장의 현장

SK에너지 원유분석실 엄주필 선임대리가 26일 원유증류탑을 축소한 ‘파일럿 플랜트’ 앞에서 막 원유 샘플에서 추출한 투명한 액체 상태의 나프타를 꺼내 보여주고 있다. 울산=박진우 기자 pjw@donga.com
SK에너지 원유분석실 엄주필 선임대리가 26일 원유증류탑을 축소한 ‘파일럿 플랜트’ 앞에서 막 원유 샘플에서 추출한 투명한 액체 상태의 나프타를 꺼내 보여주고 있다. 울산=박진우 기자 pjw@donga.com
26일 오후 울산 남구 고사동 SK에너지 원유분석실. 실험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보안경을 쓴 직원이 실험실 한쪽에 있는 원유 냉장창고에 가득 찬 원유 시료 중 하나를 꺼내 실험용 기기에 넣었다. 창고 안 작은 병에 담긴 원유는 진한 검정부터 갈색, 맑은 노란색까지 다양했다.

정유공장의 핵심 시설인 원유 증류탑을 그대로 축소해 만든 ‘파일럿 플랜트’에서는 정제된 나프타가 한 방울씩 플라스크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 파일럿 플랜트에서 하루 동안 정제하는 원유는 15L 정도다. 하루에 원유 80만 배럴(약 1억2700만 L)을 처리하는 SK에너지 울산 공장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정유시설이다. 하지만 원유분석실은 공장에 들어오는 모든 원유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 원유 성분은 지역마다 천차만별

국내 정유업계는 최근 중동에 집중됐던 원유 수입 지역을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는 ‘다각화’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 정부의 이란산 원유 수입 제재처럼 중동의 정치적 리스크가 언제든 원유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SK에너지는 올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중동 지역 외에도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노르웨이 호주 가봉 등 모두 20개국에서 원유를 도입했다. 다양한 국가의 원유를 수입해 정제하다 보니 원유분석실의 업무량도 늘어나고 있다.

원유분석실은 원유를 구매하기 전 단계부터 바빠진다. 원유 구매부서가 원유를 도입하기에 앞서 현지에서 항공편을 통해 원유 샘플을 받은 뒤 실험을 의뢰한다.

일반적으로 원유라고 하면 검은색을 띤 끈적끈적한 기름을 생각하지만 생산 지역이나 광구에 따라 겉모습은 물론이고 원유 속에 포함된 성분의 비율도 천차만별이다. 이 때문에 원유 샘플에 함유된 성분 비율을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원유 도입가격을 정한다.

원유분석실에서 15년째 근무하고 있는 엄주필 원유분석실 선임대리는 “소비자에게 팔리는 석유제품은 각각 규격이 있지만 원유는 규격이 없다”며 “지하에서 채굴돼 어떤 가공도 거치지 않은 원유를 가지고 어떤 불순물이 얼마나 있는지, 휘발유 경유 같은 제품이 각각 몇 %나 나오는지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게 우리 업무”라고 말했다. 이어 “200만 배럴짜리 유조선 한 척에 담긴 원유는 2000억 원어치 정도 된다”며 “실험 데이터가 1%만 틀리더라도 수십억 원을 손해 보게 되는 만큼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샘플 1개당 분석에 3주 걸려

실험실에서 원유 샘플을 정제하는 데는 6일가량 걸린다. 여기에 성분 분석과 보고서 작성까지 포함하면 3주 정도 소요된다. 하지만 원유 구매 특성상 긴급히 샘플 분석을 요청할 때도 있다.

박성진 선임대리는 “지난해 러시아에 파견된 직원으로부터 급하게 원유 샘플 분석 의뢰를 받은 적이 있다”며 “앞서 하던 실험을 중단하고 급히 실험을 마쳐 2주 만에 결과 보고서를 보내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2011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유럽 쪽 원유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그동안 수입한 적이 없는 새로운 종류의 원유 입찰에 참여하는 일이 많아지는 만큼 짧은 시간에 정확하게 성분을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1987년 원유분석실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간 원유 샘플만 200종이 넘는다. 국내 정유사 중 가장 다양한 원유 샘플을 갖고 있다는 것이 SK에너지 측 설명이다.

유조선에 실린 원유가 울산항을 통해 들어온 뒤에도 가장 먼저 거치는 곳이 원유분석실이다. 어떤 온도와 압력에서 정제해야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인지를 찾기 위해 다시 한번 성분 분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일럿 플랜트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양한 원유를 섞어 공장의 운전 여건에 적합한 원유를 다시 만들기도 한다. 윤성욱 SK에너지 부장은 “정유사업이 원유를 수입해서 정제한 뒤 판매하는 단순한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유회사 직원들의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있다”고 말했다.

울산=박진우 기자 p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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