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은 증거 왜곡 논란 자체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0일 03시 00분


국가정보원 정치·선거 개입과 경찰 수사 축소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경찰 사이버범죄수사대의 폐쇄회로(CC)TV 녹취록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기소할 때 공개한 자료다. 검찰이 기소와 동시에 CCTV 녹취록 같은 증거자료를 언론에 공개한 것도 부적절했지만, 그마저 일부가 왜곡됐다니 실망스럽다.

6월 14일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공개한 자료 중 ‘국정원 직원 노트북에서 선거 관련 글 확인’이란 부분에는 경찰 분석관이 “저는 이번에 박근혜 찍습니다”라며 누군가의 댓글을 읽는 대목이 있다. 실제 동영상을 확인해 보면 이 댓글은 국정원 직원이 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쓴 것이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이 그 댓글을 썼다고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노트북의 소유자인 국정원 직원이 작성한 댓글을 분석관이 읽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또 검찰 자료에는 경찰 분석관이 “대박, 노다지를 발견했다”고 말하며 선거 관련 글을 상당수 확인한 것처럼 나온다. 그러나 실제 동영상에는 이어 ‘다 북한 핵실험 이런 글들밖에 없다. 문제는 이게 그 북한 쪽이 아니라 선거 관련된 게 있느냐는 거지’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검찰 자료는 ‘북한 로켓 관련 글들… 선거 관련된 것은 확인해 봐야…”라고 모호하게 처리했고 “이거는 언론보도에는 안 나가야 할 거 아냐”라는 말로 이어져 오해를 샀다.

동영상이란 것이 어느 부분을 잘라서 어디다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 받는 인상이 달라지거나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 16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김 전 청장의 축소 수사 의혹을 추궁하면서 경찰 분석관들이 “다 갈아 버려” “예, 다 갈아 버릴게요, 싹 다”라고 대화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마치 자료 은폐를 공모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확인 결과 “다 갈아 버려” 앞에는 “쓸데없는 것들”이란 말이 있었다.

검찰 기소대로 국정원의 댓글 공작이 선거 개입에 해당되는지, 경찰의 축소 수사가 있었는지는 법원이 판단할 일이다. 다만 검찰이 왜곡 논란을 빚을 만한 자료를 공개한 책임은 가볍지 않다. 검찰은 “요약 정리 과정에서 일부 누락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큰 흐름은 공소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변명했다. 안이한 인식이다. 큰 흐름과 상관없이 왜곡된 녹취록은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수사의 최후 보루인 검찰마저 ‘짜깁기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국가정보원#정치·선거 개입#경찰 수사 축소#CCTV 녹취록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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