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집트 군부, 국민의 피로 민주주의를 살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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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반정부 시위 사태가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 군부(軍部)의 유혈 진압으로 정부 공식 집계로는 최소 638명이 숨졌고,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은 2600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부상자까지 따지면 1만 명에 이른다. 이쯤 되면 대학살(大虐殺)이다. 자국(自國) 시위대에 군이 발포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반(反)인륜 범죄다.

이집트의 이번 비극은 민주화 혁명이 성공하더라도 자동적으로 민주주의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 준다.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축출한 ‘아랍의 봄’ 이후 무슬림형제단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은 자유와 개방, 경제 재건과 일자리를 원하는 국민 대부분의 희망과 달리 독재 통치를 했다.

참다못한 이집트 국민은 거리로 다시 나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영향력 회복을 노리고 있던 군부는 시민사회 편에 서는 것처럼 위장해 권력을 차지했다. 비록 폭정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 무르시 정권이지만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군부가 개입한 것은 절차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에 큰 오점을 남긴 것이다.

단순히 이집트의 내정(內政)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현재의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에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집트의 유혈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결의를 내놓아야 한다.

이집트 군부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미국도 안이한 대응으로 최악의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할 당시 사실상 군부 쿠데타를 묵인했던 미국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양국 간 공동 훈련을 취소하고 연간 13억 달러에 이르는 군사원조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때늦은 감이 있다. 미국 내에서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외교팀의 대응 미숙에 대한 질타의 소리가 높다.

권력을 바꾸는 최선의 방법은 공명정대하고 자유로운 선거밖에 없다. 정치권력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광장에 나가 매번 폭력 시위를 벌여 지도자를 바꿀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군부 통치로의 회귀는 역사의 후퇴다. 정치적 반대파까지 포함한 자유로운 총선거를 실시해 합법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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