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43>그 여자의 남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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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남편
―테드 휴즈(1930∼1998)

일부러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집에 돌아와
싱크대와 수건을 더럽히며 그 여자로 하여금
빨래솔과 빨래판으로써
돈의 완강한 성질을 알게 한다.

또한 어떤 종류의 먼지 속에서
갈증이 생겼고 그것을 풀 권리를 얻으며
어떤 땀을 그가 돈과 바꿨고
돈의 피나는 무게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한다. 그는 그 여자의 의무를

새삼 일깨워 그 콧대를 꺾으리라.
오븐 속에 두 시간을 데운 튀겨진 나무쪽 같은 감자튀김은
그 여자의 대꾸의 일부일 뿐.
나머지 대꾸를 마저 듣고 그는 불 속에 내팽개치고는

울리는 함석판 같은 목청으로
<돌아오라 쏘렌토로>를 부르며
집 모퉁이를 돌아가 버린다.
모욕 때문에 그녀의 등은 구부러져 혹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겐 자기네의 권리가 있을 테니까.
배심원들은 작은 검댕부스러기들로부터
소집될 것이다. 그들의 소장(訴狀)은 곧장
하늘로 올라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아내가 기껏 말끔히 씻어놓은 싱크대를 시커먼 석탄가루로 얼룩지게 만들다니! 거기 축축한 수건이랑 윗도리를 둘둘 뭉쳐서 팽개쳐 놨겠지. 친지나 이웃 중에서 서민 가정의 전업주부인 이들에게 흔히 듣는 한탄이 떠오른다. “정말 치사하고 더러워서! 돈 좀 벌어 온다고 사람을 달달 볶고, 얼마나 유세를 떠는지!” 남편은 그토록 힘들었던 것이리. 돈벌이의 피나는 무게! 그래서 그저 만만한 아내를 ‘골 지르며’ 스트레스를 푸는데, 이 광부의 아내도 만만치 않다. 이미 대화도 잃은 부부. 서로 불퉁스러운 행동으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다. 왜냐? 말로 다투면 불 일듯 싸움이 커질 것을 서로 아니까. 저녁밥을 화덕에 던져 넣고 집을 나서며 남편은 아마 문이 부서져라 닫았으리. 아내 약을 올리듯 고함고함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부르며 갈 곳은 술집. 무뚝뚝하고 자존심도 센 듯한 이 여인, 입술을 깨물고 허공을 노려봤으리. 우아하지 못한 삶! 가난이 죄다. ‘그들의 소장’이란 ‘못살겠다!’는 아우성, 서민들의 무력한 아우성이다.

이렇게, 초라한 식사를 화덕에 굽고 남편이랑 싸우고 악다구니를 쓰고 사는 게 다인 줄 알고 사는 삶의 궤도가 있다. 한편, 버진아일랜드 등에 천문학적 재산을 쌓아두고 요트여행을 하면서 눈빛으로 사람을 부리는 삶의 궤도가 있으며, 정신과 영혼의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베토벤이나 세잔 같은 예술가들의 삶의 궤도가 있다. 삶에는 여러 궤도가 있으며, 우리는 저마다 자기의 궤도를 돌다 끝난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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