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애플 편 든 오바마, 자유무역 외칠 자격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5일 03시 00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6월 미국 밖에서 만든 애플의 구형 제품들이 삼성전자 특허를 일부 침해한 것으로 판단해 해당 제품의 미국 내 수입 금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3일 ITC 판정에 거부권을 행사해 노골적으로 애플 편을 들었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26년간 미 정부가 ITC의 권고를 거부한 사례는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산업계의 강력한 로비와 미 반독점 당국의 우려 때문에 삼성전자의 법적 승리인 ITC 결정이 뒤집어졌다”고 보도했다. 마이클 프로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정·재계의 치열한 로비가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미국은 한때 강력한 보호주의로 자국(自國) 산업을 육성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출범 후엔 세계에서 가장 충실하게 자유무역 정책을 견지해 왔다. 더욱이 미국은 GATT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전환시킨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지식재산권 문제를 의제에 포함시키는 등 특허권 존중을 주창해온 국가다. 이번 거부권 행사는 자유무역 및 지식재산권에 대한 미국의 의지와 평소 중국의 보호주의를 맹공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소신을 의심하게 한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 분쟁은 기업끼리의 문제다. 기업 간 분쟁을 다루는 ITC 결정에 정부는 중립을 지키는 것이 상식이다. ITC도 과거 삼성이 특허 침해로 애플을 제소한 사건에 대해 애플의 손을 들어준 적이 있다. 그런 ITC조차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애플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정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은 유감이다. 미국은 특허분쟁에서 자국 이기주의에 경도돼 있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표준특허를 갖고 있는 특정 기업의 이익보다 특허 활용에 따른 소비자 이익을 더 중시한 결정이라는 평가도 있다. 문제는 그런 결정을 왜 하필이면 애플과 삼성의 분쟁에 처음으로 적용했느냐는 것이다. 만일 오바마 정부의 원칙이 바뀐 것이라면 삼성을 포함한 다른 나라 기업에도 똑같이 적용해야만 자국 기업만을 위한 거부권 행사라는 오해를 벗을 수 있을 것이다. ITC는 9일 삼성전자의 애플 특허 침해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 세계는 ITC가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지 주시할 것이다.
#자유무역#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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