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봉균]‘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핵심도 경제 콘텐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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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조금 양보해 개성공단 재가동시키고
평화공단을 추가로 조성해 미국기업까지 입주시키는
‘선(先)개방 프로세스’가 핵포기 강요보다 현실적

강봉균 객원논설위원 건전재정포럼대표
강봉균 객원논설위원 건전재정포럼대표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60년 전통의 한미 방위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함으로써 북한의 군사도발을 억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한미동맹 강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와 발전으로까지 한국의 역할을 확장함으로써 우리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그러나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 놓겠다는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상은 어떻게 북핵문제 해결의 전기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관심을 가질 만한 새로운 메시지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개발 같은 무모한 전략을 즉각 포기하고 굶주리는 백성을 먹여 살리려 한다면 우리가 협력하겠다는 제안은 북한에 새로울 게 없다. 경제력이 남한의 30분의 1밖에 안 되는 북한으로서는 남북한 군사력 균형을 유지할 능력이 없고, 한미군사동맹은 계속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유일한 생존수단은 핵 개발밖에 없다는 생각을 더욱 굳힐 가능성이 있다. 다만 북한정권이 의지해왔던 중국마저 최근 핵개발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김정은 정권은 새로운 생존수단을 찾아야 할 절박한 처지에 직면해 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미얀마 모델’에서 북한과의 대화카드를 찾을 수 있다. 미얀마 모델이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수용하는 대신 외국인 투자를 적극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가 조금 양보해서 개성공단을 재가동시키고 그 전제조건으로 근로자의 안전보장과 투자자의 사유재산 보호를 요구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북한 여러 곳에 ‘한반도 평화공단’을 조성해 한중일은 물론이고 미국기업까지 입주시키면 북한은 더이상 무력도발을 못하고 핵,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선(先)개방 프로세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비핵화 단계로 나아가는 게 무조건 핵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현실성이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늘날 지구상에 외국 기업이 전혀 투자하지 않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다. 전 세계 개도국들이 받고 있는 세계은행(IBRD)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자금지원을 받지 못하는 나라도 북한밖에 없다. 우리가 미국 일본 등을 설득해 북한도 국제개발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북한도 외국 기업들을 위한 인프라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행들까지 북한은행들과의 금융거래를 끊는 마당에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장기비전과 경제협력 콘텐츠가 없으면 작동하기 어렵다.

‘서울프로세스’로 명명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도 한반도 평화 유지와 통일기반 조성을 위해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주변 강대국들의 협력도 능동적으로 이끌어내겠다는 자주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는 동북아에서 군사적 균형자 역할을 할 만한 능력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지역의 공동번영을 위해 교역과 투자, 금융협력과 교류 같은 경제 콘텐츠를 갖고 접근하는 것이다. 다른 방안은 실효성도 의문이고 관련국들의 관심도 끌기 어렵다.

동아시아 지역은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같은 지역경제협력체가 없는 거대 경제권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하다. 한중일+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같은 지역협력회의가 해마다 열리고 있고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도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그 속도를 높이고 폭을 확대하는 데 한국이 적극적 역할을 한다면 ‘동북아 평화협력프로세스’도 작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일원이 되면 핵을 포기하고 평화공존의 동반자로 탈바꿈할 수 있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박 대통령이 다음 달 방문하는 중국이 미국보다 더 좋은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이미 4년 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구상을 주창한 일이 있고, 러시아도 북한을 관통하는 시베리아 가스관 개설과 극동지역개발을 위해 동북아 지역과의 경제협력을 중시하고 있어 여건이 나쁘지 않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담겨질 경제 콘텐츠는 처음부터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경제협력의 실제 추진세력인 기업을 대변할 경제단체나 민간연구기관들이 앞장서는 게 바람직하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민간이 먼저 경제협력 콘텐츠를 만들어 국민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정부는 정경분리 입장을 유지하며 뒤에서 지원하는 게 효과적이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공개적인 당국 간 대화로 시작하면 정치적 장애에 부딪치기 쉬우므로 막후 대화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남북한 간의 대화와 신뢰를 이끌어 낼 경제협력 콘텐츠를 만들고 동북아 경제협력구상을 구체화해 관련국들과 협의해 나갈 민간전문가들의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강봉균 객원논설위원 건전재정포럼대표 bkkang@kif.re.kr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경제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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