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96>한마디의 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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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의 말
―고트프리트 벤(1886∼1956)

한마디의 말, 한 편의 글―. 부호로부터 올라오는
삶의 인식, 의미의 돌출,
태양은 뜨고, 대기는 침묵하네.
모든 것들이 그 한마디에 몰리듯 굴러가네.
한마디의 말―. 한 개의 빛남, 한 번의 비상, 한 개의 불,
불꽃 한 번 튕기고, 흐르는 한 번의 별빛―.
다시 어둠이 오네, 이 세상과 내 둘레의
텅 빈 공간에 무섭게 내리네.

언어에 대한 엄격하고 명철한 정리! 허튼 말 한마디 없이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한 시구로 제가 정리한 바 그대로를 보여주는 시다. ‘삶의 인식, 의미의 돌출!’ 말 한마디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경건하게 되새기면서, 나도 이렇게 ‘태양은 뜨고, 대기는 침묵하고/모든 것들이 그 한마디에 몰리듯 굴러가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해진다. 나는 시인이다. 시인은 언어의 기술자도 아니고 언어의 ‘파티맨’도 아니다. 언어의 경작자이며 파수꾼이며, 연금술사. ‘한 개의 빛남, 한 번의 비상, 한 개의 불’ 같은 언어를 향해 정진해야지!

대담집 ‘언어 감각 기르기’에서 요네하라 마리는 말한다. ‘아직 말이 되지 않은 상태가 있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나 사고나 감정 같은 것이 희미하게나마 형태가 갖추어져, 간신히 그걸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나, 문장 형태, 혹은 표현, 스타일 같은 게 결정돼 소리로 나오는 게 말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말이 있다. 말이 탄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말. 그런 말은 상대방 마음을 파고들 수 없다.’

우선 평소에도 생각 없이 말하지 말자. 말을 귀하게 쓰자. 물 쓰듯 쓰지 말고, 돈 쓰듯 쓰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도 있고. 언어가 없다면 우리 인간이 무엇으로 서로의 존재를, 사물들을, 세상을, 삶을 깨달아 알겠는가? 한마디, 한마디, 소중한 말!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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