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문태준]‘학급 문집 만들기’가 관심을 끄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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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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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비가 오는데도/어미 소는 일한다./소가 느리면 주인은/고삐를 들고 때린다./소는 음무음무거린다./송아지는 모가 좋은지/물에도 철벙철벙 걸어가고/밭에서 막 뛴다./말 못 하는 소를 때리는/주인이 밉다./오늘 같은 날 소가/푹 쉬었으면 좋겠다.’

이 동시는 경북 울진군 온정초등학교 4학년 2반 김호용 어린이가 ‘비오는 날 일하는 소’라는 제목으로 쓴 것이다. 책 ‘비오는 날 일하는 소’에 실려 있다. 이 책이 1991년 출간되었으니 김호용 어린이도 이제 삼십 대가 되었겠다. 이 책은 온정초등학교 4학년 2반 어린이 27명 모두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한 학급 어린이 시집이다. 경북의 농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온 이호철 선생님의 글쓰기 지도로 세상에 나왔다. 이호철 선생님은 이 책을 펴내기 전에도 10여 년 동안 학급 문집 ‘꽃 교실’을 펴냈다. 책은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살렸다. ‘어쩌꼬(어떻게 하지)’ ‘궁디(궁둥이)’ ‘디게(굉장히)’ ‘지발(제발)’ 같은 어휘들은 읽고 듣기에 울퉁불퉁하지만 독특한 맛이 있다. 책의 ‘머리말’을 쓴 이오덕 선생님은 이 사투리야말로 ‘가장 깨끗한 우리말’이라고 평했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서 섭섭했다. 나는 어제 어머니께서 사 주신 우산을 쓰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오늘은 비가 안 왔다. 집에서 나는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비 오기를 기다렸다. 다음에 비가 오면 나도 새 우산을 쓰고 힘차게 학교에 가야지.’

이 일기는 대구 대봉초등학교 2학년 박주희 어린이가 쓴 것이다. 1984년에 출간된 책 ‘웃음이 터지는 교실’에 실려 있다. 박주희 어린이도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었겠다. 이 책은 작고한 이오덕 선생님이 생전에 어린이들의 일기를 엮어 만든 문집이다.

어린이가 직접 쓴 문집은 그동안 꾸준히 출간되었다. ‘섬진강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용택 시인은 임실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와 덕치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한 학급 아이들이 직접 쓴 동시들을 모아 문집들을 펴내기도 했다. 섬진강 작은 학교에 다니는 한 학급 어린이들의 순수하고 새싹 같은 동심의 세계는 많은 독자들의 시선을 단박에 끌었다. 문화의 중심지가 아닌 벽지(僻地)의 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삐뚤빼뚤 쓴 것이어서 더욱 신선한 충격이었다. 김용택 시인은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을 각별히 좋아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깨끗한 영혼, 이슬을 단 풀잎”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최근 한 출판사에서 ‘학급 문집 만들기’를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어 문단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 학급 혹은 초등학교의 한 도서관에서 아이들의 글, 그림, 일기 등을 모아 출판사에 보내오면 이 출판사가 무료로 문집을 제작해 준다고 한다. 지원 대상도 100개 학급 또는 도서관이라고 하니 사업의 규모가 꽤 크다. 이러한 소식이 반가운 이유는 이 출판사가 책 출간을 통해 얻을 영업이익의 기회를 미루거나 제쳐 두고 우리들의 미래 세대인 아이들의 상상력 키우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데에 있다.

아이들은 무한을 향하고 무한과 대화한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미리 계획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미래 세대인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창의를 보살펴 키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아이들이야말로 “감각의 성화되고 순수한 움직임”이며 “능동적인 우주의 동숙자”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인간의 삶의 최초의/시적 영(靈)’이 ‘세월의 획일적 통제에 의해/감소되고 억압’되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시인 페데리코 로르카도 ‘전설로 무르익고/깃 달린 모자와/나무칼로 무르익은/어린 시절의 영혼’을 소중하게 여겼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타고르는 산티니케탄에 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타고르는 시 ‘유적의 땅’에서 “어머니, 오늘은 우리의 휴일, 토요일입니다/어머니, 일을 그만두십시오. 여기 창가에 앉아 동화 속의 테판타르 사막이 어디인가 말해 주세요”라고 썼다. 타고르 또한 어린이들이 가진 때 묻지 않은 상상력에 주목했으며, 동심의 활기와 천진함이 사라지는 것을 염려했다.

불교 경전 ‘백유경(百喩經)’에 이런 우화가 있다. 한 부자가 멋진 삼층집을 보았다. 부자는 전망 좋은 삼층의 공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대목수를 불러 즉시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대목수는 땅을 파고 돌을 묻어 기초를 만들어갔다. 그러나 부자는 삼층이 올라가지 않자 버럭 화를 냈다. “나는 삼층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일층도 이층도 필요 없다. 맨 위층부터 지어라”라고 소리쳤다. 이 우화는 우리를 크게 경책한다. 우리는 열매 따기만을 원하는 것이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열매를 얻으려면 열매가 익기까지의 긴 시간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어린이날이 열흘 남짓 남았다.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이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문태준 시인
#학급 문집#어린이#창의력#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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