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94>나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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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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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싸움
―신현림(1961∼ )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화자는 외로움과 슬픔에 취약한 사람이다. 그래서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고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지경이다. 이러다간 내 삶이 망가질 거야!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하는데, 우울하고 쓸쓸하고 불안하기만 해서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속이 까맣게 타고 죽을 맛이다. 그래도 일은 해야 먹고살지. 이럴 때 따뜻한 생기를 나눠 줄 한 사람이 그립구나. 내 처지가 어쩌면 이리도 외롭고 슬픈가. 마음이 습자지처럼 나약해진 화자, 삶을 갈아엎을 결연한 의지도 실행할 힘도 안 나니까 소리를 빽 지른다.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힘없는 사람이 악이나 쓰지 뭐. 그러고 나서 다시 첫 행으로 돌아가 투지를 다진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두둥! 박수치고 싶게 멋진 말!

일하는 건 망가지지 않은, 버젓한 사회인으로 사는 기본 조건일 테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은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돈이 생기기 때문에 일을 한다. 일하다 몸이나 정신이 망가지기도 한다. 망가져도 일을 한다. 그게 생업(生業)이라는 거다. 생업에 시달리는 사람은 그다지 외롭지는 않다. 괴로울 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은 행운아다. 그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튼튼해진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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