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배설 생애 책으로 펴낸 정진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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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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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언론인 된 영국인…그 사연이 궁금했어요”

정진석 교수는 “배설은 국한문, 한글, 영문 3개 신문을 발행하며 일제와 싸운 항일언론투사”라고 말했다. 기파랑 제공
정진석 교수는 “배설은 국한문, 한글, 영문 3개 신문을 발행하며 일제와 싸운 항일언론투사”라고 말했다. 기파랑 제공
“배설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과 비견되곤 합니다. 배설의 파란만장한 삶은 영화나 TV 대하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74)가 영국인으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배설(裵說·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사진)의 생애를 추적한 책을 펴냈다.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동포를 구하라’(기파랑)라는 책 제목은 배설이 37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며 독립운동가 양기탁에게 남긴 유언에서 따온 말이다.

정 교수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배설에 대한 연구에 매달렸다. 그는 기자협회보 편집실장이던 1976년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을 손으로 한 장씩 넘겨가며 영인 작업을 벌이면서 언론인 배설의 삶에 매료됐다. “한국과 별 관련이 없던 배설이 어떻게 한국에서 일제의 검열을 안 받는 치외법권을 이용해 대표적인 항일 언론인이 됐는가가 궁금했어요. 그의 출생부터 한국에 오게 된 경위가 하나도 알려진 게 없었지요.”

정 교수는 배설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1985년 영국 런던정경대(LSE)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영국 국립문서보관소를 뒤져가며 배설의 출생증명서, 졸업증, 일본에서 형제들과 함께 운영하던 회사 등록 서류까지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배설의 유족과도 만나 대한매일신보사에 걸려 있던 영국기와 태극기, 배설에 대한 추모 글을 모은 ‘만사집’ 같은 유품을 기증받기도 했다. 2011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 유품은 현재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 있는 신문박물관(PRESEUM)에 전시돼 있다.

정 교수가 발굴한 외교문서를 보면 일제 통감부가 영국 정부에 배설을 추방하고 신보를 폐간시키라고 얼마나 심각하게 협상을 벌였는지 알 수 있다. 또 상하이 주재 영국 고등법원 판사와 검사, 일본인 서기관과 증인들, 한국인 의병대장 증인까지 참여한 배설의 재판기록은 우리 사법사에 남는 국제재판으로 기록됐다.

배설은 최근 서재필기념사업회에 의해 ‘올해의 민족언론인’으로 선정됐다. 정 교수는 “배설은 황성신문에 실렸던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렸다”며 “그가 운영한 대한매일신보는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이자 신민회의 비밀 총본부, 항일 민족운동의 커다란 울타리였다”고 평가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정진석 교수#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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