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물먹인 ‘황제 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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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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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콧 그린재킷 도운 윌리엄스… 우즈 포함 대회 4번째 우승 합작
2년전 해고한 우즈는 공동4위 그쳐

‘환상의 콤비’로 활약했던 2008년 US오픈에서의 타이거 우즈(오른쪽)와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 동아일보DB
‘환상의 콤비’로 활약했던 2008년 US오픈에서의 타이거 우즈(오른쪽)와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 동아일보DB
공개적으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38·미국)를 ‘흑인 멍청이’라고 부르고, 필 미켈슨(43·미국)을 ‘비열한 녀석’이라고 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이 남자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티브 윌리엄스(50·뉴질랜드). 그는 캐디다. 선수를 보조하고, 선수를 보스로 모셔야 하는 바로 그 캐디다. 그런데 윌리엄스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는 그냥 평범한 캐디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캐디가 천직임을 깨닫고 캐디로서 한 우물을 판 그는 젊은 시절부터 세계적인 골퍼들의 동반자였다.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오픈에서 5차례 우승한 피터 톰슨(호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20승을 거둔 ‘백상어’ 그레그 노먼(호주), PGA 투어 22승에 빛나는 레이먼드 플로이드(미국)가 그의 고객이었다.

그 정점에는 타이거 우즈가 있었다. 1999년부터 2011년까지 우즈와 그는 ‘찰떡궁합’이었다. 둘은 13년간 PGA 투어에서 72승을 합작했다. 마스터스 우승 3회를 포함해 메이저대회 우승도 13차례나 했다. 우즈를 위해서라면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셔터 소리 때문에 우즈가 방해를 받았다”며 우즈의 스윙 모습을 찍던 갤러리의 카메라를 빼앗아 연못에 던져버렸고, 자신을 찍던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그는 PGA에서 뛰는 어지간한 골퍼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우즈와 함께한 13년간 그의 수입은 1200만 달러(약 134억 원)를 넘었다. 아쉬울 것도, 무서운 것도 없었다. 2008년 그는 우즈의 라이벌로 불린 미켈슨을 “비열한 녀석”이라고 비난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논란이 불거진 이튿날 그는 “그는 내게 존경을 표하지 않는다. 내가 그에게 존경을 표할 이유가 없다”고 정면 돌파했을 정도다.

영원할 것 같았던 우즈와의 인연은 2009년 말 터진 우즈의 성 추문 이후 막을 내렸다. 좀처럼 예전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던 우즈는 2011년 7월 “변화가 필요하다”며 윌리엄스에게 해고 통보를 했다. 윌리엄스는 곧바로 “13년간 충성한 결과가 이렇게 돌아오다니 너무 실망스럽다. 앞으로 애덤 스콧(33·호주)의 캐디 백을 멜 것”이라고 밝혔다.

스콧이 그해 8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하자 윌리엄스는 “내 생애 최고의 승리였다”며 우즈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해 11월 한 인터뷰에서는 우즈를 지칭해 “그 흑인 멍청이를 이기는 게 목표였다”는 강경 발언도 했다.

15일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파72·7435야드)에서 열린 제77회 마스터스 마지막 라운드에서 그린재킷의 주인공이 된 선수는 다름 아닌 스콧이었다. 이날 3타를 줄여 최종합계 9언더파 279타를 쳐 앙헬 카브레라(아르헨티나)와 공동 선두가 된 스콧은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 호주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전년도 챔피언 버바 왓슨(미국)으로부터 그린재킷을 받아 입은 스콧은 두 팔 벌려 환호했지만 그 뒤에서 더 큰 웃음을 짓고 있던 것은 ‘킹 메이커’인 윌리엄스였다. 스콧은 연장 두 번째 홀에서 3m 버디 퍼팅으로 우승을 확정지은 상황에 대해 “어두워져 그린이 잘 보이지 않아서 라이를 읽기가 어려워 윌리엄스를 불렀다. 그 퍼트 때 윌리엄스는 나의 눈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우승으로 윌리엄스는 캐디로서 생애 146번째 우승을 함께했다. 마스터스 4번을 포함해 메이저대회만 따져도 14번째 우승이었다.

한편 통산 다섯 번째 이 대회 우승을 노렸던 타이거 우즈는 2라운드에서 논란이 됐던 ‘타이거 룰’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5언더파 283타로 공동 4위에 머물렀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타이거 우즈#스티브 윌리엄스#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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