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진 차베스주의… 마두로 1.59%P차 힘겨운 승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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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수엘라 새 대통령에 ‘차베스 후계자’ 50.66% 득표 당선

14일 실시된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 우고 차베스의 ‘정치적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임시 대통령(51)이 야권의 엔리케 카프릴레스 후보(41)를 누르고 당선됐다.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투표가 끝난 뒤 마두로 후보가 50.66%(750만5338표)를 얻어 49.07%(727만403표)를 득표한 카프릴레스 후보를 1.59%포인트(23만4935표) 차로 앞섰다고 공식 발표했다. 임기는 6년.

매우 근소한 차로 대선 당락이 결정되자 카프릴레스 후보는 “당국의 개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불복을 선언해 재검표 등 당분간 혼란이 예상된다.

○ ‘야권 포용’ 차베스와는 다른 정치 환경

마두로 대통령 당선인은 차베스의 시신이 임시 안치된 카라카스의 군 박물관에서 한 당선 연설에서 “차베스가 이끌었던 14년이 연장되는 것”이라며 “위대한 차베스의 승리는 계속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국의 승리, 차베스여 영원하라”고 외치며 기쁨을 나타냈다.

마두로는 승리했으나 선거 캠페인 당시 10% 이상 앞서다 최종적으로 1.59%의 근소한 차로까지 좁혀진 현실로 인해 ‘차베스주의’가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마두로는 차베스의 후계자임을 강조하며 그의 정책 실현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그는 당선 연설에서 “혁명의 시대는 효율적이어야 한다”며 야권을 끌어안을 계획임을 시사했다. 국민 과반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반대파를 몰아세웠던 차베스와는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의식한 것이다.

○ ‘버스 운전사에서 대통령까지’

마두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버스 운전사로 시작해 대통령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국회의원 국회의장 외교장관 부통령 등을 거친 그는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다. 1962년 11월 수도 카라카스에서 노조 지도자의 아들로 태어난 마두로는 고등학교 학생회장으로서 정치 경험을 쌓은 뒤 공공버스 운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노조 지도자로 일하던 그는 1992년 쿠데타 실패로 수감된 차베스 구명 운동에 나서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구명 운동 당시 차베스의 법률팀을 이끌던 실리아 플로레스 변호사를 만나 결혼했다. 그녀는 베네수엘라 첫 여성 국회의장과 검찰총장이 됐다. 마두로는 1998년 대선 캠프에 합류해 차베스를 도왔다. 1999년에는 제헌의회 의원,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장을 지냈다. 차베스가 외교장관과 부통령으로 중용한 그는 차베스의 임종을 가족과 함께 지킨 최측근이다.

○ ‘차베스 후광 벗고 홀로서기’ 과제

좌파적 이념을 양보하지 않는 강경한 인물로 분류되지만 실용성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야권으로부터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모든 공직이 차베스의 후광 덕분이며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실제로 선거운동 기간에도 차베스만 있었고 마두로는 없었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차베스는 신이고 나는 사도”라는 표현까지 썼다. 카리스마가 넘쳤던 차베스와 달리 존재감이 약한 마두로가 남미 좌파연대를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차베스의 유산을 물려받은 그에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식료품 의약품 부족, 두 자릿수 실업률, 만성적인 전력 부족, 높은 범죄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AP통신은 대부분의 문제는 정부가 달러를 규제하고 환율을 통제하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차베스의 빈곤 퇴치 프로그램 확대를 약속했지만 재정 상황은 여유가 없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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