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느림의 미학’ 청산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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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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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어촌 ‘슬로우 길’ 조성… 4월 걷기축제에 7만명 찾아
무공해 봄나물 장터도 북적

봄이 무르익은 14일 유네스코 지정 슬로시티의 한 곳인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서 열리고 있는 ‘청산도 슬로우 걷기 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영화 서편제의 배경이 된 당리 돌담으로 꾸며진 유채꽃 길을 걷고 있다. 청산도 슬로우 걷기 축제는 4월 30일까지 열린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봄이 무르익은 14일 유네스코 지정 슬로시티의 한 곳인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서 열리고 있는 ‘청산도 슬로우 걷기 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영화 서편제의 배경이 된 당리 돌담으로 꾸며진 유채꽃 길을 걷고 있다. 청산도 슬로우 걷기 축제는 4월 30일까지 열린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영화 ‘서편제’ 재현 행사가 열린 13일 전남 완도군 청산도 도청항 부두는 하루 종일 알록달록 등산복 차림의 인파로 붐볐다. 이달 1일 ‘슬로우 걷기 축제’가 개막한 이후 하루 최대 인파인 6000여 명이 섬을 찾았다. 이 때문에 하루 11회 운항하던 화물여객선이 3차례 더 다녀야 했다. 청산도는 4월이면 쪽빛 바다와 노란 유채꽃, 푸른 청보리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한 달 동안 섬은 축제의 장이 된다. 이 기간에만 섬 주민(2257명)의 30배가 넘는 7만여 명이 다녀간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흘러가는 ‘느림의 미학’이 청산도의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 느리게 걷는 11개 ‘슬로우 길’

완도항에서 뱃길로 50분 거리인 청산도는 1993년 1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서편제’로 널리 알려졌다. 때 묻지 않은 자연 환경과 느리게 살아가는 섬 주민의 생활양식은 2009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바다를 배경으로 한가로운 어촌마을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11코스(17길), 100리(42.195km)를 ‘슬로우 길’로 조성했다. 미항길, 사랑길, 낭길, 범바위길 등 코스별로 정겨운 이름도 붙였다.

‘슬로우 길’은 2011년 국제슬로시티연맹 공식 인증 ‘세계 슬로우 길 1호’로 지정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청산도가 미국 CNN이 선정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33선에,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99선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도 슬로우 길 때문이다.

슬로우 길은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에 이어 국내 3대 걷기코스로 자리 잡았다. 2009년 슬로우 걷기 축제를 시작하면서 연 9만 명에 머물던 관광객이 매년 늘어 지난해에는 33만 명이 찾았다. 1코스인 당리 입구(서편제 촬영지)에서 봄의 왈츠 세트장, 연예바위, 읍리 앞개, 권덕리 해변을 거쳐 범바위까지 걷는 5코스가 인기 구간이다. 바다 풍광을 보며 10km를 걷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걸으면서 체험하는 느림보 우체통 편지쓰기, 조개 공예, 슬로우 길 보물찾기, 느림 풍경 담아오기 등은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13일 서울에서 청산도를 찾은 김성님 씨(65·여)는 “봄의 왈츠 세트장을 배경으로 유채와 보리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광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슬로우 장터’도 인기

걷기 축제 기간 동안 청산도는 여느 섬과 딴판이다. 여름휴가 때처럼 나루터에 승용차가 줄 지어 늘어서고 섬 곳곳에서 장터가 열리는 등 시끌벅적하다. 주말에는 모텔, 펜션, 민박 110여 곳이 관광객들로 꽉 차 빈방이 없다. 식당과 상점도 호황을 누린다. 1년 매출의 절반을 4월 한 달 동안 올리는 곳도 있다. ‘슬로우 장터’는 4월 청산도의 신풍속도다. 주민들은 산이나 들에서 캔 쑥, 달래, 취나물, 두릅, 고사리 등을 가지고 나와 관광객들에게 판다. 주민 정옥남 씨(58)는 “봄나물을 팔아 200만 원 가까이 소득을 올린 주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슬로 푸드’는 청산도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양지리에 자리한 ‘슬로시티 청산도 느림섬 여행학교’에서는 섬에서 채취한 나물 등으로 슬로 푸드를 만들어 판다. 슬로시티 사무국(061-554-6969)에서 하루 150명 정도 예약을 받아 운영한다. 걷기 축제 기간에는 슬로 푸드 도시락(1개 6000원)도 판매한다.

관광객의 발길이 늘자 교통편도 개선됐다. 하루 4회 섬과 육지를 오가던 정원 100명의 화물여객선 1대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지만 4월 한 달 동안에는 하루 7∼11회 운항하고 있다. 섬 내 교통은 농어촌버스 1대, 17인승 마을버스 1대, 택시 4대뿐이었으나 이제는 35인승 투어버스 1대와 45인승 버스 2대가 30분 간격으로 다닌다. 안봉일 청산면장은 “4월이면 1970년 전국 3대 파시 중 하나였던 청산도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금명간 달팽이와 바다를 소재로 한 상징물을 부두 앞에 설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슬로시티’ 청산도 인증 기록

―2009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지정
―2011년 국제슬로시티연맹 인증 ‘세계 슬로우 길 1호’
―2012년 CNN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33선’ 선정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선정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99선’
―2013년 농림수산식품부 청산도 구들장 논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 지정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서편제#청산도#슬로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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