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우 “천재라고 우쭐, 부상으로 혼쭐, 그게 약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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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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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배구 삼성화재 6연패 이끌고 세터상 받은 유광우

2012∼2013 NH농협 V리그 시상식이 열린 서울 여의도 63시티의 3층 사이프러스홀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삼성화재 세터 유광우. 팀의 6년 연속 우승에 기여한 그는 2년 연속 세터상을 받았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012∼2013 NH농협 V리그 시상식이 열린 서울 여의도 63시티의 3층 사이프러스홀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삼성화재 세터 유광우. 팀의 6년 연속 우승에 기여한 그는 2년 연속 세터상을 받았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배구 중계가 나오면 TV를 껐다. 선수들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병실에 있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삼성화재 유광우(28)는 고교(인창고) 때부터 초특급 세터로 통했다.

고교 3학년 때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고, 인하대 시절에는 김요한(LIG손해보험)과 호흡을 맞춰 3학년 때 5관왕, 4학년 때 4관왕을 합작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천재 세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대표팀에 선발된 뒤 뭔가 보여주겠다는 욕심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게 화근이 됐다. “대학 4학년이던 2007년 여름 대표팀에서 훈련을 하다 오른 발목을 다쳤어요. 그 상태로 경기를 뛰다 부상이 악화됐는데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죠.”

유광우는 그해 11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삼성화재에 지명됐다. 확률 추첨을 한 덕분이었다.

“2라운드로 밀린 게 아닌가 싶었을 정도로 믿기지 않았어요. 롤 모델이었던 (최)태웅이 형과 함께 뛸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뻤죠.”

설렘은 잠시였다. 첫 훈련부터 발목에 빨간불이 켜졌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양말을 내려 보니 엄청나게 부어 있었다. 운동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라고 기억했다.

유광우는 그해 마지막 날 수술대에 누웠다. 세 달 뒤면 팀에 합류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오산이었다. 수술은 실패했다. 의료 사고였다.

“수술 2주 뒤 퇴원해 통원 치료를 받았는데 점점 더 아팠어요. 엄지발가락도 움직이지 않았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죠.”

2주 뒤 다시 입원해 거의 10개월을 병원에 머물렀지만 상태는 더 나빠졌다. 결국 신 감독은 그를 강제 퇴원시킨 뒤 독일로 보냈다.

“독일 전문의가 자기공명영상(MRI)을 보더니 수술이 잘못된 것 같다고 했어요. 그분을 따라 독일로 가 11월에 재수술을 했고 이듬해 3월까지 현지에서 재활치료를 했어요.”

유광우는 두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억울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마음을 가다듬었다.

2009∼2010시즌 그는 후보 세터로 25경기에 출전했다. 활약이라고 하기에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가 코트를 비운 사이 전체 6순위로 프로에 입단한 동기 한선수는 대한항공의 간판스타가 돼 있었다. 유광우가 주전으로 뛰기에는 최태웅의 아성이 너무 견고했다. 하지만 2010년 6월 현대캐피탈이 자유계약선수 박철우의 보상 선수로 최태웅을 데려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팀으로 보면 위기였고 개인적으로도 부담이 컸지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2010∼2011시즌부터 그는 주전 세터가 됐다. 그리고 두 시즌 동안 가빈, 이번 시즌 레오와 호흡을 맞추며 삼성화재의 6년 연속 우승을 이뤄냈다.

“돌이켜 보면 부상이 제겐 선물이었어요. 대학교 때는 자신감이 넘쳤어요. 그 상태로 조금 더 지났으면 자만심에 빠져 망가졌을지도 모르잖아요.”

앳돼 보이는 외모지만 어느새 그는 팀에서 5번째 고참이 됐다. ‘고참 3총사’ 석진욱 여오현 고희진이 언제까지 뛸지 모르기에 갈수록 책임감을 느낀다.

“삼성화재는 선수 개인이 뛰어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팀 문화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고 자부합니다. 그런 팀에 있다는 건 행운이죠. ‘먹튀’가 될 뻔한 저를 2년이나 기다려 준 팀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내친김에 4년 더 내리 우승해 10연패를 달성하고 싶어요. 그때는 ‘한국 최고의 세터’라는 말을 들을 만한 자격이 되지 않을까요.”

유광우는 3일 열린 프로배구 시상식에서 2시즌 연속 세터상을 받았다. 그는 한사코 부인했지만 ‘천재 세터’는 이미 부활에 성공한 듯 보였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세터#유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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