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배극인]나뭇잎 파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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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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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도쿄 특파원
배극인 도쿄 특파원
가미카쓰(上勝) 마을은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개의 큰 섬 가운데 가장 작은 섬인 시코쿠(四國) 내륙의 산간 지역에 있다. 한국의 면에 해당하는 이곳은 현청 소재지인 도쿠시마(德島) 시에서 차로 1시간 거리. 주민 1800여 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이 절반이다. 마을 면적의 85.1%는 산림이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경지는 1.9%에 불과하다. 그나마 비탈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과 밭이 많아 기계화도 곤란하다. 감귤 재배가 주민의 주요 수입원이었지만 1981년 이상 한파로 나무가 모두 고사했다. 이 정도면 절망이 지배할 땅 같지만 이곳은 활기와 웃음으로 넘친다. 비결은 지천에 널린 나뭇잎이다. 마을 할머니들은 나뭇잎을 팔아 연 2억 엔(약 23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나뭇잎을 판다고?

1986년 오사카(大阪) 시의 한 초밥집. 가미카쓰 마을 농협 직원이던 요코이시 도모지(橫石知二) 씨는 무심코 들려온 옆 테이블 여자아이의 탄성에 귀가 번쩍 뜨였다. “우아, 정말 예쁘다.” 여자아이는 생선회 요리 위에 얹어진 빨간 단풍잎을 컵에 띄우고 싱글벙글했다. 단풍잎 등 나뭇잎은 제철 생선을 많이 쓰는 일본 요리의 맛을 더하기 위해 장식하는 소품이다. 일명 쓰마모노(妻物). ‘나뭇잎이라면 가미카쓰에 얼마든지 있고, 노인들이 다루기에 무겁지도 않은데….’ 감귤 나무 고사 이후 새로운 수입원 발굴에 고심하고 있던 요코이시 씨는 즉시 시장 조사에 나섰다. 시골엔 흔한 나뭇잎이지만 도시에서는 돈이 될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요리점들은 대부분 문하생을 시켜 나뭇잎을 직접 따오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하는 종류의 색감 좋은 나뭇잎을 제때 조달하기 쉽지 않았고 문하생도 갈수록 줄고 있었다. 이만하면 틈새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문제는 다양한 상품개발과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제때 공급할 수 있는 생산체제 확립. 특히 고급 요리점들은 가을이 오기도 전에 가을을 연출할 수 있는 단풍잎을 원했고 겨울 요리에서 봄 향기를 풍기고 싶어 했다.

요코이시 씨는 반신반의하는 마을 할머니들을 설득해 비닐하우스에서 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요리점들의 종류별 나뭇잎 공급 요청에 선착순으로 수주할 수 있는 경쟁 시스템도 도입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사용하기 간편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하자 처음엔 팩스만 고집하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며 선착순 입찰에 나서고 있다. 특히 마을 내에 매출액 순위 경쟁이 붙으면서 할머니들은 시스템이 제공하는 각종 판매 동향 정보를 참고해 출하 목표를 세우는 전략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경쟁은 상품의 품질 저하를 막았고 마을 전체에 건강한 긴장감과 활력, 공통의 화제를 늘렸다. 마을이 살아나자 국내외에서 견학 요청이 쏟아졌고 마을에 정착하겠다는 도시 젊은이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선진국 공통의 과제인 고령화와 인구의 급속한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갖은 지혜를 짜내고 있는 일본 자치단체들의 노력은 벤치마킹 대상이다. 해마다 정부 예산을 따내 다리와 도로를 만드는 데만 골몰하거나, 수도권에 있는 공장이나 기업 빼내기가 지역 발전의 전부라고 믿는 자치단체라면 더욱 그렇다. 일본에서는 자치단체들의 창의적인 노력을 지칭해 ‘마치 오코시(町おこし·지역 부흥)’라는 조어도 생겼다. 버전이 업그레이드된 ‘일본판 새마을운동’인 셈이다. 일본의 부정적인 뉴스에만 눈이 쏠려 있으면 일본의 진면목을 놓칠 수 있다.

배극인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
#가미카쓰 마을#고령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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