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성진]새해 한국 법치(法治)가 가야 할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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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기본
사회지도층부터 法준수하고 범법행위땐 엄정처벌해야 국민생활속에 법치 뿌리내려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국민대 명예교수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국민대 명예교수
누구든 ‘왜 우리는 이 시기에 한국의 법치주의를 새삼 논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해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대통령 당선인이 평소 원칙과 법치를 강조해왔고, 최근에 임명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 평생 법에 의한 지배의 원리를 실현하는 직에 종사해온 분이기 때문이라고 단선적(單線的)으로 대답해버리고 말 일도 아니다.

물론 지금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 초의 촛불시위나 강정마을사태 등과 같은 집단행위에 대하여 법치국가다운 원칙 있는 대응을 적기에 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더 많은 사회적 비용과 갈등이 야기되었다는 반성을 우선은 해볼 수가 있다. 그러나 입법기관인 국회도 그동안 고질적으로 다음 해 예산안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해야 한다는 헌법규정(제54조 2항)을 무시하여 왔고, 이번 국회는 임기 개시 후 7일에 최초의 개회를 한다는 국회법의 규정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대다수 국민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점도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연전에 세계은행이 발표한 각국 통치지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법치 수준이 100점 만점에 74점으로 다른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이 90점을 웃도는 데 비하여 참으로 낯부끄러운 수준이었음도 우리는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한국의 법치주의는 서구에 비하여 연륜이 짧고 국민생활 속에 이미 뿌리내려진 유교문화의 영향도 있어서 그 정착이 쉽지 않은 터에, 일제의 식민통치와 일시 권위주의적이었던 정부를 거치면서 더 기구한 역사를 가지게 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대통령 긴급조치나 국가보위입법회의의 국회 대행 입법 등이 적지 않은 국민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겼던 사실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권력의 행사는 마땅히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법치국가적 원리가 새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이끌 정부의 일상적 지도이념이자 국민생활의 대원칙으로 자리 잡아야 할 이유는 너무도 충분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새해 한국의 법치주의는 어떤 길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아야만 할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의 법치주의는 나라의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큰길을 먼저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시장경제의 원리(헌법 제119조 1항)가 큰 줄기일 것이고, 같은 제119조의 2항에서 규정하는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 등도 이를 보충하는 중요 줄기일 것이다.

법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기본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념 때문이든 이해(利害) 때문이든, 일종의 타성처럼 참여민주주의적 또는 직접민주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사람이나 집단이 너무나 많다. 국회 안에서, 또는 법정에서조차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고 국가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들이 흔하게 벌어져서야 어떻게 나라의 격을 지키고 세계가 주목하는 동북아시대의 경쟁을 이겨낼 것이며 통일에 대비한 진정한 남북대화 체제의 구축·유지가 가능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법에 최고의 권위가 없으면 자유의 상태도 없다(There is no free state where the laws are not supreme)’는 서양 법률격언을 다시 한 번 살피게 되며, 헌법적 가치 실현의 주요 집행책임자인 검찰총장이나 국가정보원장 또는 경찰청 및 공정거래나 금융감독기관 책임자들의 임무에 대한 중요성도 재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에, 새해 우리 사회에서의 법치주의는 국민의 통합과 치유에 꾸준히 기여·봉사하는 배려와 노력 속에서 운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선거 과정에서도 극명히 드러난 지역과 계층 및 세대 간의 이격(離隔)현상은 더이상 방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므로 이제는 국민의 생활과 밀착된 법치주의의 실현을 통하여 국민의 흐트러진 마음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이른바 힐링의 효과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중산층의 폭을 넓히는 정책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지도층과 권력층 등 이른바 ‘가진 자’라고 할 수 있는 사회계층의 수범적인 법 준수와 이들의 범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반드시 여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면권도 국민적 공감을 바탕으로 최대한 절제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검찰에 대한 신뢰회복을 위한 상설 특별검사제나 특별감찰관제 등의 채택은 입법 조치를 요하므로 빠르면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공직윤리의 점검, 확인과 중소기업이나 소비자 보호를 위한 공정거래 또는 고용확대 등의 조치에도 국민통합을 위한 ‘따뜻한 법치’, ‘물 흐르는 듯한 법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국민생활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민생치안과 부패 일소를 위한 법치운용도 필수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법은 준엄해야 할 대상에게는 준엄하고, 따뜻해야 할 대상에게는 따뜻해서 국민의 꾸준한 신뢰를 얻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은 도약하지 않으며 법 또한 그러하다’는 옛사람들의 깨우침을 우리의 법 운용자들은 겸허히 받아들여 지켜가야만 할 것이다.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국민대 명예교수
#법치#사법#경제#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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