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淸 조선사절 숙소 ‘옥하관’ 자리는 現최고인민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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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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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규 순천향대 교수, 淸 건륭제 시대 지도에서 확인

명청시대 베이징에서 조선의 사절이 머물던 대표적 조선관인 옥하관 자리. 지금 이곳에는 중국 최고인민법원이 들어서 있다. 박현규 교수 제공
명청시대 베이징에서 조선의 사절이 머물던 대표적 조선관인 옥하관 자리. 지금 이곳에는 중국 최고인민법원이 들어서 있다. 박현규 교수 제공
중국에 표류한 경험을 ‘표해록(漂海錄)’으로 남긴 최부(崔溥·1454∼1504)가 베이징(北京)에서 머물렀던 숙소 옥하관(玉河館)의 위치가 새롭게 밝혀졌다.

박현규 순천향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사진)는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 때 제작된 지도 ‘건륭경성전도(乾隆京城全圖·1750년)’를 확인한 결과 옥하관이 지금의 중국 최고인민법원 자리에 있었음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그동안 옥하관은 지금의 서우두(首都)호텔 자리에 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또 박 교수는 우리 사신들이 1905년까지 묵었고 고종 말기 조선 공관으로 활용된 옥하교관(玉河橋館)이 지금의 베이징시공안국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내용은 박 교수가 14일 중국사학회 학술발표회에서 발표한 논문 ‘명청시대 북경 조선사관 고찰’에 포함됐다. 논문은 명청시대 조선의 사절이 베이징에서 머무른 관사인 ‘조선관’ 11곳의 위치를 고증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관 위치 가운데 틀린 것을 바로잡고, 알려지지 않은 조선관의 위치를 찾아 추가해 11곳의 위치를 한꺼번에 밝힌 것이다. 이를 위해 박 교수는 300여 권의 연행록을 뒤지고 베이징을 답사했다.

청나라 때 조선의 사절이 머물렀던 베이징의 사찰 지화사(智化寺). 박현규 교수가 위치를 고증한 베이징 내 조선관 11곳 가운데 유일하게 현재까지 건물이 남아있는 곳이다.
청나라 때 조선의 사절이 머물렀던 베이징의 사찰 지화사(智化寺). 박현규 교수가 위치를 고증한 베이징 내 조선관 11곳 가운데 유일하게 현재까지 건물이 남아있는 곳이다.
조선 성종 때 문신이었던 최부는 제주에 지방관으로 머물다 부친상을 당했다. 그는 고향 전남 나주로 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풍랑을 만나 중국에 표류했다. 그는 항저우(杭州)에서부터 운하길을 따라 베이징에 이르렀고, 이때 머무른 곳이 옥하관이었다. 박 교수는 “조선의 문신이라는 최부의 신분을 명나라가 예우해 이곳에 묵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논문에 따르면 15세기 초부터 17세기 말까지 베이징에 간 조선 사절은 모두 옥하관에 머물렀다. 홍길동전의 작자인 허균도 1614년 명나라에 사행 갔을 때 이곳에 묵었다. 옥하관은 남회동관(南會同館)이라고도 불렸으며 조선뿐 아니라 몽골, 일본, 베트남 등의 사절도 사용했지만 1689년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에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되면서 러시아 사절이 옥하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 사절이 옥하관을 우선적으로 차지하고 다른 나라 사신들은 다른 장소로 옮겨 다녔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러시아 사람들의 성품이 사나워 청나라가 이들의 뜻을 거스르지 못한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박지원은 베이징 번화가 서단(西單) 옆 민족문화궁 자리에 있던 서관(西館)에 머물렀다.

옥하교관은 옥하관의 남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던 공관이다. 조선 사절은 1748년부터 1905년까지 이곳을 이용했는데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도 여기에 머물렀다. 옥하교관 건물은 20세기 중반에 없어지고 지금은 베이징시공안국 건물이 들어섰다.

박 교수는 조선 사절이 옥하관을 러시아 사절에게 내준 뒤 전전했던 독포사(督捕司), 법화사(法華寺), 십방원(十方院)의 위치와 북고려관(北高麗館)의 위치도 찾아냈다. 베이징의 조선관 11곳 가운데 지금까지 건물이 남아 있는 곳은 명대에 지어진 사찰인 지화사(智化寺)뿐이다.

박 교수는 “조선 사절은 통상 40∼50일간 조선관에 머물렀다”며 “조선관은 숙소일 뿐 아니라 양국의 외교 업무가 이뤄진 장소, 문화 교류의 장소, 사절과 함께 간 상인들이 물자를 교역하던 장소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베이징 소재 조선관을 찾는 작업은 한중 외교가 전개된 역사적 장소를 규명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앞으로 양국 우호 교류의 장소로도 조선관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조선사절 숙소#옥하관#최고인민법원#박현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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