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이 좌파로 가는 건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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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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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간 파문당했던 ‘성 비오 10세회’ 수장 필레 주교, 18년 만에 한국 찾아
“교회 순수성 지키기 위해 교황청과 계속 대화중”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최근 국제 가톨릭계의 ‘진객(珍客)’이 한국을 찾았다. 1988년 로마 교황청에 의해 파문(破門)당했던 성 비오10세회(Society of Saint PIUS X·SSPX) 수장 버나드 필레 주교(53·사진). 이 단체는 1971년 설립 이후 가톨릭 내에서 라틴어 미사를 고수하는 등 전례와 교리에서 보수적인 그룹으로 꼽힌다. 이 단체의 창시자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가 교황청의 동의 없이 필레 신부 등 4명을 주교로 서품하자 교황청은 이들을 파문했고 2009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이를 철회했다.

올 7월 중국의 한 주교가 교황청의 승인 없이 신부를 주교로 서품해 두 사람 모두 파문됐고, 2006년에는 잠비아 에마뉘엘 밀링고 대주교가 결혼과 주교 서품 문제로 역시 파문된 바 있지만 SSPX처럼 개인이 아닌 가톨릭 단체가 교황청과 대립해 파문당한 것은 드문 일이다. 이 단체는 사제 500여 명이 세계 60여 개국에서 선교와 신학교 운영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 성 비오10세회는 서울 충신동 성모무염시태 성당에서 100여 명이 참석해 매주 마지막 일요일 라틴어로 미사를 올리고 있다. 한국 SSPX를 둘러보기 위해 방한한 필레 주교를 23일 귀국에 앞서 만났다.

―지금은 철회됐다지만 파문은 성직자로서 공포 아닌가.

“(웃음) 오리의 깃털에 물이 한 방울 떨어진 것처럼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는 우리의 신앙적 노력이 올바른 방향이기 때문이다.”

―18년 만의 방한이다.

“다시 와서 기쁘다. 한국에는 한 달에 한 주씩 성 비오10세 사제가 방문한다. 사제가 항상 같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는데 아쉽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인사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나.

“방문 기간이 짧아 만나지 못했다.”

―로마와의 갈등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 면이 있다. 우선, 우리가 로마의 동의 없이 주교 서품을 시행한 것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내에 큰 변화를 초래했지만 우리는 이 변화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맞는 자국어 미사와 전례 등을 인정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교회의 개방성과 열린 자세가 나쁜 것인가.

“물론 교회는 가톨릭을 믿지 않는 사람과도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가톨릭이 단 하나의 참종교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나쁜 일이다.”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교황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종교 평화를 위한 대회’(27, 28일)가 열린다. 한국 조계종의 원장 스님도 참석하고 있다.

“자연적인 인간 차원에서는 다종교 간에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믿음의 차원에서 가톨릭만이 진리라는 것을 감추고 어떻게 일치를 이룰 수 있나?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현재 교황청은 파문은 철회했지만 완전한 일치 이전에 SSPX의 법적 지위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양측은 사제 서품 등 다양한 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교황의 성향에 따라 SSPX의 입지가 바뀌기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들을 파문한 반면 보수적으로 평가받는 베네딕토 16세는 이를 철회했다.

―사제 서품 문제의 결론은….

“지금 로마에서 우리에게 해법을 제시하고 있고 대화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로마의 매우 진보적인 성직자들은 가톨릭교회가 좌파로 가길 원한다. 우리는 이를 참을 수 없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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