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지 리모델링, 이렇게 하자]<1>더 받으려면 더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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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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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투자 없애고 수급자 엄격심사, 물새는 곳부터 막자”

《1960년 생활보호법 제정으로 시작한 한국 복지제도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최근 ‘70% 복지’ ‘친서민 정책’이 국정 의제로 등장할 만큼 차상위계층이상까지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생계 위협 외에도 불안정한 고용·저출산 고령화 등 새로운 위험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 복지는 20년 안에 갈림길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데 드는 비용은 생산가능인구(15∼64세) 6.6명이 나눠 내면 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출산율이 유지된다면 2020년에는 5명이, 2030년에는 2.7명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비용 대비 효율을 높이는 복지제도를 설계해 20년 앞을 대비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복지병을 심하게 앓은 유럽식 복지도, 극심한 빈부차이를 보이는 영미식 복지도 한국이 가야 할 길은 아니라고 한다. 한국 사회복지의 현재를 진단하고 지속가능한 한국형 복지 모델은 무엇인지 탐색해 본다.》

동아일보 복지팀은 최근 복지 분야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한국 복지제도의 개선 방법 및 방향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문가들은 50년 동안 빠르게 발전해온 한국 복지를 전면적으로 리모델링할 시점이라는 데 동의했다. 근본적으로 ‘복지 확대를 위해 증세 등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걷는 것에는 오랜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만큼 단기적으론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복지 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 “복지 재원 논의 시작할 때”

2008년 도입한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기초노령연금액은 월 9만 원이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도입한 장애인연금액은 월 9만∼15만 원이다. 전형적인 저부담 저급여 형태다. 제도의 틀은 완성됐지만 실질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기에는 미흡하다. 이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내고 더 받는’ 복지 구조로의 전환을 논의할 때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고경환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2007년 한국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2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의 평균 조세부담률 26.7%보다 5%포인트 이상 낮다”며 “적정 부담, 적정 급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재구 중앙사회복지관장은 “사회정책이 소비재가 아니라 생산재라는 인식 아래 조세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조세 부담을 높이려면 먼저 조세체계나 연금 개혁을 선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 위원은 “공무원 군인 교직원 연금 등 부담에 비해 급여가 높은 연금의 개혁이 이뤄져야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 파악률을 높여 조세체계를 공정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 목적세 신설 △감세정책 철회 △개별 보조금의 포괄보조금 전환 △부처 간 중복 투자 극복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 재원 확보 전에 효율성 높여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증세 논의에 앞서 복지 체계를 효율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석상훈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원만 확보하면 소득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은 무책임하다”며 “현 복지 정책은 백화점식으로 나열했을 뿐 내실 있게 운영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를 완화하지 않은 채 분배 영역에서만 양극화를 해결하려 한다면 복지 지출은 한없이 증가한다”며 “사회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자리 창출같이 경제 예산으로 편성한 예산도 알고 보면 복지 급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분산되고 비효율적인 예산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용 대비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복지서비스 전달체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회복지 현장 종사자들의 비판이 날카로웠다.

수급자 관리를 위해 △정보기술(IT) 기반 전달체계 활용 △사회복지전담인력 확충 △부정수급 징벌제 도입 등이 제안됐다. 박영숙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 국장은 “수급자와 부양자에 대한 엄격한 실사를 통해 예산 누수를 막아야 한다”며 “위반 시 수급비용의 2배를 물어내는 환급제를 도입하자”고 말했다. 복지 대상자의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복지혜택을 차상위 계층 이상으로 확대하려면 자선이 아니라 인적 자본의 투자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혜영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리는 “희망키움통장 같은 매칭 후원, 자활급여 같은 조건부 수급을 확대해서 자립의 길을 열어주고 복지 의존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진 보건사회연구원은 “생계지원 같은 현금 지급은 최소화하고 교육 문화 의료 서비스 같은 현물 지급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한국의 새 패러다임 모색’ 경기복지재단 심포지엄 ▼
“복지, 빠르게 달리느라 사각지대 넓어져”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콘퍼런스룸에서 열린 ‘복지 한국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심포지엄에서는 복지 분야 교수와 현장 전문가 150여 명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콘퍼런스룸에서 열린 ‘복지 한국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심포지엄에서는 복지 분야 교수와 현장 전문가 150여 명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국의 복지를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경기복지재단이 창립 3주년을 맞아 지난달 23일 개최한 심포지엄에서도 똑같이 터져 나왔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콘퍼런스룸에서 열린 ‘복지 한국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심포지엄에서는 본보의 전문가 조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재원 부족과 서비스 비효율성 문제가 제기됐고 대안에 대한 토론이 활발했다.

서상목 경기복지재단 이사장은 “무상급식을 하려면 1조8000억 원이 필요한데 경기도만 해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세금이 걷히지 않아 재정이 어렵다”며 “복지 서비스를 바라는 도민이 많은데 한정된 비용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복지 분야 교수와 현장 전문가 150여 명이 지속가능한 복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 성장 빠르지만 사각지대 넓어

이날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한국 복지가 빠르게 성장해 왔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1961년 생활보호법이 제정되며 생계보호가 시작됐고 장애인연금, 기초노령연금, 양육수당이 차례로 도입돼 공적부조 제도가 완성됐다. 5대 사회보험도 마찬가지다. 1964년 산재보험에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까지 모두 도입됐다. 건강보험의 경우 우리나라는 도입부터 전 국민 확대 실시까지 12년이 걸린 반면 유럽 국가들은 보통 30∼90년이었다.

이렇게 압축 성장한 복지제도가 현 단계에선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김상균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의 복지서비스는 외형적인 성장만 해왔기 때문에 최하위 빈곤층에 대한 지원은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차상위계층 문제 등 사각지대가 넓고 복지 혜택이 실질적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복지를 ‘개발국가형 복지체제’로 정의했다. 홍 교수는 “과거 경제성장은 고용창출로 이어져 빈곤과 분배상황이 자연스럽게 개선됐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성장-고용-분배의 선순환이 작동하지 않아 개발국가형 복지가 한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저임금 일자리의 확산이나 근로소득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복지정책만으로 분배를 하는 것은 재원 낭비를 초래한다는 분석이다.

○ 지자체-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돼야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보건복지노동 예산은 올해보다 6.2%(5조1000억 원) 늘어난 86조3000억 원이다. 총지출 대비 복지지출 비중도 27.9%로 사상 최고다. 2004∼2010년 복지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10.7%로 정부 총지출 연평균 증가율 6.9%를 상회한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의 복지 체감도가 낮다. 서비스의 총량은 확대됐으나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복지서비스 전달체계가 따로따로여서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복지 전달체계가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황경란 경기복지재단 복지경영팀장은 “복지시설이 시설운영비를 보조하는 정부에 종속될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서비스로 수요자의 선택을 받도록 서비스 시장을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팀장은 지금처럼 시설 운영비를 보조금 형식으로 일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서비스당 비용으로 환산하는 구매계약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구매계약제는 복지 수요자가 직접 특정 복지 프로그램을 선택하게 하는 제도다.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인 현행 전달체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김영종 경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앙부처 위주의 관료화된 전달체계는 복지 대상자의 개별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며 사회복지의 지방분권화를 주장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우리의 지역공동체에는 상부상조 정신이 아직 살아있다”며 “지역복지네트워크를 구축하면 서비스의 효율성 증대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신뢰가 두터워져 사회적 자본을 축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도움말 주신분 50명]

○ 보건복지부(12명)=권덕철 복지정책관, 이상영 연금정책관, 김강립 사회서비스정책관, 최영현 장애인정책국장, 최희주 인구아동정책관, 장재혁 노인정책관, 이영호 보육정책관, 이동욱 보건의료정책관, 고경석 건강보험정책관, 임종규 건강정책국장, 전병율 질병정책관, 김원종 보건산업정책국장

○ 사회복지 분야 교수(10명)=양옥경 이화여대, 홍선미 한신대, 이준영 서울시립대, 이재원 부경대, 김연명 중앙대, 구인회 안상훈 서울대, 이상이 제주대, 신진욱 중앙대, 홍경준 성균관대

○ 정책연구원 연구위원(7명)=이태진 강신욱 고경환 김승권 보건사회연구원, 이혜영 교육개발연구원, 석상훈 국민연금연구원, 이희영 건강보험정책연구원

○ 민간단체(5곳)=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부랑인복지시설연합회,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 국회의원(6명)=강명순 손숙미 원희목 한나라당, 박은수 주승용 최영희 민주당

○ 사회복지사(5년차 이상 팀장급 10명)=장재구 중앙사회복지관, 장원종 사랑의 복지재단, 김혜영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만영 동산노인복지관, 정민화 경남마산종합복지관, 노환성 굿네이버스, 박영숙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 윤록 숭실복지재단, 김궁자 수원다문화가족지원센터, 유혜영 여송사회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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